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15
[15] 엘리야가 승천하다 (왕하2:1-18)
엘리야 선지자가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께로 갈 시간이 되었다. 엘리야 스스로도 그 시간이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올라가기 전 자신이 세운 선지학교를 돌아보고 싶었다. 선지학교는 오늘날의 신학교이다. 그곳에서 많은 신학생들이 훈련받고 있었다.
엘리야가 세운 선지학교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있었다. 신학생들의 숫자는 학교에 따라 오십 명, 혹은 백 명 쯤이었다(왕하2:7, 왕하4:43). 그리고 엘리야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엘리사가 선택되었다.
엘리야는 본래 자신의 승천을 비밀로 하고자 했다. 하나님의 일을 마치고 올라가는데 요란스럽게 나팔을 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선지학교를 돌아보고 승천하려고 했는데 엘리사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왕하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가 벧엘로 가면 벧엘로 쫓아갔고, 여리고로 가면 여리고로 쫓아갔다. 스승과 제자 관계의 모범적인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엘리사는 뼛 속까지 스승 엘리야의 목회 DNA를 갖고 싶어 했다.
엘리야가 후계자 엘리사에게 어떤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는지 물었다. 엘리사는 성령의 역사가 스승보다 갑절로 나타나기를 구했다.
(왕하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목회를 보며 큰 비전을 품게 되었던 것 같다.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엘리야의 승천 계획을 엘리사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신학생들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당시 신학생들은 모두 영적으로 깨어 있었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이다. 헌신된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왕하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왕하2: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엘리사는 신학생들이 하나 같이 엘리야의 승천을 말할 때 잠잠하라고 명령한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엘리야의 승천이 조용하고 은밀한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조용한 퇴장이다. 우리는 보통 자기 이름이 조금만 알려지면 일거수일투족을 세상에 광고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엘리야가 선택한 조용한 퇴장은 우리도 배워야 하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본문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왕하2:7-8)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 물을 치니 강물이 갈라졌고 두 사람은 마른 땅으로 건넜다고 말씀한다. 이 일은 마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아가는 길에는 이렇게 장애물이 걷히는 역사가 있는 것이다.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보면서 가장 닮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일까? 엘리사는 스승을 아버지라 부르며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라고 불렀다.
(왕하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북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우상숭배는 유행처럼 번졌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았던 것은 바로 엘리야 같은 하나님의 종이 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스승의 역할을 회고하며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병거였고 마병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의인 한 사람 때문에 한 집단이 태평을 누리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 때문에 소돔성에서 유일하게 롯의 가정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엘리야의 승천 장면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불수레와 불말들이 나타나 엘리야와 엘리사를 분리시키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 말씀한다.
(왕하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학자들은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것이 아니라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했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승천 장면을 지켜 본 선지생도 50명은 엘리야의 시신을 찾자며 엘리사에게 제안했다.
(왕하2:16-17)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50명이 사흘 동안 흩어져 찾았지만 엘리야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다시말해 성경 그대로 엘리야는 하나님 앞으로 불려 올라갔다는 것이다. 엘리야의 승천은 그에게 실제 현실이었고, 우리에게도 부활은 실제 현실이 되는 것이다. 엘리야는 에녹과 함께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늘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