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7
[17] 감사 열정(感謝 熱情) 하자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외국을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종들을 불러 각각의 재능(ability,능력)대로 자기의 소유를 맡기고 나갔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그러나 그 큰 돈의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언질(言質)도 주지 않았다. 당시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20년 품삯에 해당하는 매우 큰 금액이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으로 장사를 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를 남겨 총 열 달란트를 만들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역시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겨 총 네 달란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을 파서 그 돈을 묻어 두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장사를 하지 않고 돈을 땅에 묻어 둔 이유는 주인이 그 돈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한다는 생각에서였다(마25:24). 주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오해한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주인이 돌아와서 그 종들과 결산을 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을 칭찬했다. 주인을 매우 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종은 질책을 했다.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종의 존재 목적이 무엇일까? 주인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종 아닐까?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과 한 마음, 한 뜻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주인과 함께 할 수 없는 종은 아무 쓸모없는 존재인 것이다. 반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들처럼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열정으로 주인을 섬기는 자가 주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거나 다른 길을 걷고자 하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열정은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양초가 타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방을 밝히겠는가? 쓰레기 통에 버려질 뿐이다. 양초는 최선을 다해 자기 몸을 태워야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품꾼들은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나가 하루 품삯을 벌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인지라 일당을 벌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에 바로 직격탄이 되었다.
포도원 주인은 새벽이 밝아 오자 인력시장에 나가 품꾼들을 뽑아 포도원에 들여 보냈다. 그날 선발된 사람들은 흥겹게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세 시간 쯤 지나 또 품꾼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또 세 시간 후에도 품꾼이 들어왔다. 품꾼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아침에 들어온 품꾼들만 있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시간 후에 또 품꾼들이 들어왔다. 모두가 갸우뚱 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나 십일시 곧 오후 다섯시에 품꾼들이 또 들어왔다. 일과가 거의 끝나 가는 시간에 품꾼들이 또 들어온 것이다.
아마 이쯤되자 모두들 주인의 뇌건강에 의문을 가졌을 수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일이 끝나 가는 시간에 품꾼을 들여 보낼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주인이 돈 없다고 배째라고 하면 어떡하지? 라며 괜한 상상을 했을 수도 있다. 이거 기분이 쎄 한대? 라며 자기들끼리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주인의 뇌에는 문제가 없었다. 늦게 온 사람부터 불러내더니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지불해 주었다. 일찍 온 사람들은 늦게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니 자기들은 더 많이 바을 수 있겠다며 내심 즐거워 했다. 그러나 주인이 품꾼들에게 지불한 돈은 차별없이 모두 한 데나리온이었다.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다. 이건 공평하지 않다며 주인에게 항의했다.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늦게 온 사람들보다 더 받아야 합당하다고 따져 물었다. 주인도 할 말은 있었다. 포도원의 하루 일당은 한 데나리온이고, 늦게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권리라고 했다. 이것은 늦게 온 사람에게는 대단히 감사한 배려이지만, 일찍 온 사람들은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라며 불쾌하게 했다.
이 비유는 오늘 구원받은 우리들의 얘기이다. 먼저 예수 믿었다고 천국에서 큰 지분을 요구할 수는 없다. 시간상 먼저 믿은 것은 자기의 공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누구나 천국을 상속받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은혜는 본래 하나님의 긍휼에 기인한 것이기에 오히려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품꾼들은 누가 일찍부터 일을 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주인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주인은 자기의 이익을 줄여가며 다른 사람을 돕고 있는 것이다.
포도원 주인이 일을 마친 후 품꾼들에게 품삯을 나누어 주는 것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메시지는 한마디로 '감사열정'이다.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지막에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들은 사실 그날의 수입을 포기하고 낙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마음 좋은 포도원 주인이 품삯을 줄터이니 한 시간 만이라도 일을 하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품꾼들의 사정을 이해한 주인의 배려였다.
품꾼들은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남은 한 시간 감사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서, 주인을 위해 일을 했던 것이다. 감사열정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었다는 명분으로 많은 시간 일을 시키고도 임금은 쥐꼬리 만큼 받아 가게 하는 열정페이( 熱情Pay)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포도원 주인의 마음은 감사하며 진심을 다한 그들에게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품삯을 지급함에 있어서 감사열정을 보여준 사람들, 곧 늦게 온 사람들부터 기쁜 마음으로 품삯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상식이고, 하나님 나라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구원받은 우리들은 주님께 감사열정으로 응답해야 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처럼 열정을 다해 주인을 이롭게 해야 한다. 포도원에 마지막으로 들어와 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한 품꾼들처럼 감사열정(感謝 熱情)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하루 하루를 그저 되는 대로 살면 안된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 감사열정(感謝 熱情)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