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9
[19] 탈출구는 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 소돔성은 풍요로웠다. 요단 지역 곧, 사해 바다 남쪽에 위치한 소돔은 여호와의 동산으로, 애굽 나일강변의 땅으로 비유될 만큼 비옥한 곳이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렇게 살기 좋은 곳에 하나님께서 유황불을 내리셔서 잿더미가 되게 하셨다. 소돔성이 멸망한 이유는 흔히 동성애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창19: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상관한다는 것은 동성애를 하겠다는 말이다. 영어 성경에는 'we can have sex with them' 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동성애자를 소도미스트(sodomist)라고 한다. 창19장에는 소돔성의 남자들이 집단으로 찾아와서 롯의 집을 방문한 천사들을 상대로 동성애를 하고자 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것이 멸망을 불러온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보통은 이 사실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소돔성 멸망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 에스겔서는 이렇게 말씀한다.
(겔16:49-50)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에스겔이 선포하는 소돔성 멸망의 직접적인 요인은 그들의 교만함과 연약한 자를 멸시함과 가증한 일 때문이었다고 말씀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가난한 이웃을 무시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롯의 가족에게 소돔성을 떠나 멀리 벗어나기를 명령했다. 하지만 롯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아쉬움에 지체했다. 그래서 천사들은 강제로 롯의 가족들을 이끌어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롯의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다. 모든 재산을 포기한 그에게 이제는 그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소알성으로 피신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롯의 아내 또한 자기의 소유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롯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동굴 속에 들어가 생활했다. 우선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기에 돌아갈 곳이 없었고, 다르게 생각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에 바깥 출입이 망설여졌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불타버린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벗어나 다른 성읍에 가서 새롭게 다시 시작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삼촌 아브라함을 찾아가 몸을 의탁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업이 부도나 찾아온 것도 아니요 재앙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찾아온 조카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올 때 조카 롯을 자식처럼 생각하여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롯은 동굴에서 성인이 된 두 딸과 살았다. 두 딸의 약혼자들은 다 유황불에 죽었다. 이제 주변에 남자가 없었다. 두 딸에게는 신앙이 없었던 것 같다. 두 딸은 서로 합의하에 이틀 연속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들들을 낳았다. 큰 딸이 낳은 아들의 이름은 모압이고 훗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작은 딸의 아들의 이름은 벤암미이고 훗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창19:36-38)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으로 고향 땅을 떠났던 롯이 이제는 그 믿음과 어울리지 않게 콩가루 집안의 원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소돔성에 살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가 자포자기의 인생이 되고 만 것이다. 이후에 롯에 대한 것을 성경은 더 이상 말씀하지 않는다. 성공한 인생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굴에 들어가 사는 것은 혹 현실 회피가 아닐까? 인생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도망가는 모습이 아닐까? 좀 더 적극적으로 기도하면서 길을 찾았다면 최소한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자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영어 속담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고 한다. 그리고 이런 속담도 있다. 'There is always a way out' (언제나 탈출구는 있다).
롯처럼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포기하지도 말아야 한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지라도 그것보다 더 큰 은혜로 돌려 받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욥처럼 잃었던 것을 갑절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한 기적은 늘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돔성의 멸망은 롯의 죄 때문이 아니다. 롯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소돔성에서 유일한 참 신앙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가족만 구원받은 것이다. 다만 소돔성 탈출 과정에서 재산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고,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만약 롯이 포기하지만 않았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롯의 인생을 보며 느끼는 것은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쫓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롯이 요단 지역을 선택한 것은 그 땅이 물이 많고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동산 같아 보였고, 애굽 땅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땅은 유황 불이 쏟아지는 땅이었다. 롯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실패한 삶이 되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눈에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 부부에게 선악과는 군침이 고이는, 맛있어 보이는 과실수였지만,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원인이 된 나무였다.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롯처럼, 아담 부부처럼 실패하지 않으려면 눈에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롯이 소돔성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했다면, 아담 부부가 뱀의 말을 듣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다면 그들은 성공한 삶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고난과 고통과 어려움으로 휩싸여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탈출구를 만들어 놓으신다. 그런고로 어렵다고 푸념만 할 것이 아니라 겸손히 간구하면 된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는 구호를 기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