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1
[21] 땅 끝을 향하여
노아의 홍수가 375일 만에 완전히 끝나고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랏 지역에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학자들에 의하면 그 이후 130년 쯤 흘러서 노아의 후손들은 남동쪽으로 이동했을거라고 한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정착지는 시날평지였다.
(창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시날평지는 위로 티그리스강과 아래로 유브라데강이 흐르는 평야 지대이다. 구약시대에 이곳은 바벨론 땅이었고, 지금은 이라크 지역이다. 이곳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다. 그리고 시날평지 바로 아래 쪽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 지역이다.
시날평지를 발견한 노아의 후손들은 그곳에 성읍을 건설하고 높은 탑을 세우고자 했다. 홍수 사건이 모두의 뇌리에서 아직 지워지지 않았을 때이기에 어찌하든 흩어지지 않기 위해 성읍을 건설하고 높은 탑을 쌓아서 흩어짐을 예방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흙으로 벽돌을 구웠다. 평야 지역이므로 많은 돌을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탑을 쌓으려면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돌 보다는 정형화된 벽돌이 유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벽돌과 벽돌을 이어 붙일 접착제로 역청을 사용했다. 시날평지 주변에는 역청이 많았다고 한다.
(창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탑을 쌓는 것을 보시려고 내려오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림이 아니었다. 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하나님께서는 땅에 충만하라고 노아의 가족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지역에 뭉쳐서 무리지어 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창조기사에서도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었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고자 하셨다. 뭉쳐 사는(stick together) 것을 깨뜨리고자 하셨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족이 나누이기 전이었기에 언어가 하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어를 흩으셨다. 하루 아침에 많은 언어로 나누이게 되었다. 정확히 몇 개의 언어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제는 알아 듣는 말보다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이 더 많아졌다. 이것을 하나님의 '언어 분리사역'이라고 학자들은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언어가 분리되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따로 따로 흩어져 나갔다.
그리고 이곳을 혼돈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바벨'로 부르게 되었다. 바벨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인간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면 마침내 바벨탑의 결말처럼 되고 만다는 교훈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시선은 항상 땅 끝을 향해야 한다. 베드로가 황홀경 가운데 고백한 '여기가 좋사오니'는 은혜 받을 자리로서 여기가 좋다는 것이지 땅 끝을 반대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창조기사에서도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고(1:28), 홍수 후 노아의 가족들에게도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9:1).
(마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사도바울은 복음전도를 위해 당시 땅 끝이라고 여겨지던 서바나를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 서바나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으로 유럽의 서쪽 끝자락이다.
(롬15: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과 다르게 우리는 안목을 넓혀야 하겠다. 더 멀리, 더 넓게 바라보아야 하겠다. 요나 선지자처럼 유대 민족이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유대 민족만 구원받아야 한다는 편협된 사고를 가져선 안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복음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유명한 왕들은 정복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은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었다. 몽골제국은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 뿐 아니라 동유럽 지역까지 정복했다. 실로 광활한 영토였다.
그런데 몽골제국의 시대는 90년 만에 막을 내렸다. 로마제국이 1,000년의 역사인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짧은 역사이다. 몽골제국은 유목민족이다. 말을 타고 유럽까지 빠른 속도로 정복했지만, 말이 곧 군사력이다보니 몽골 초원을 떠나지 못해 먼 곳까지 통치력이 미치지 못해 결국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의 선교 지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집 앞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선교는 무너지고 만다. 영적인 영토를 넓히기 위해 복음 들고 나가 영적인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 바벨탑을 건축하겠다는 것은 선교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교는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박해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박해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복음을 전하게 해준다.
(마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슬로건(Slogan)은 크게 두 가지이다. 흩어지지 말자는 것과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이다(창11:4). 흩어지지 않으면 선교는 없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기 위해 하는 모든 것도 선교가 아니다. 선교적 사명의 반대의 길로 갔던 노아의 후손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짐을 당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선교적인가? 만약 내 이름을 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선교적 삶이 아니다. 내 것을 지켜내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역시 선교적 삶이 아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하겠다. 그것이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인생에게는 결국 쓸쓸함만 남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의 결말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