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신앙에세이 '접근 혹은 접촉'

문학n천국 2022. 3. 26. 17:24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3

[23] 접근 혹은 접촉

신약성경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혈루병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 혈루병은 만성적인 자궁 출혈로 인해 하혈하는 증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자궁 출혈이다. 구약성경의 개념으로는 유출병이다. 유출병은 몸에서 피나 고름이 흘러내리는 병이다.

유출병은 환자 스스로에게 매우 괴로운 병이며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 당함으로써 자괴감(自愧感)을 갖게 하는 질병이다. 영혼까지 병들게 하는 질병인 것이다. 혈루병의 현대 의학적인 병명에 대해 학자들은 자궁근종이나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을거라고 말한다.

레위기 15장에 의하면 이 유출병을 가진 자가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하게 되고, 이 사람이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 병을 가진 자는 설 자리가 없었다.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왕따 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한센병(leprae), 곧 문둥병처럼 사회에서 격리조치 되었던 질병이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병이 즉시 치유받았다고 말씀한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을 것이다. 예수님 계신 곳에는 언제나 많은 군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저지 당하지 않고 예수님 앞까지 나온 것도 기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고 온전히 치유받았다.

(막5:25, 27-29)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병을 고치기 위해 가진 돈을 다 쏟아 부었지만 상태는 악화되고 말았다. 나름 명성있는 의사들을 찾아가 치료 받았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던 것이다.
(막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아마도 혈루병은 당시 의학 수준에서는 정복하기 어려운 질병이었던 것 같다. 여인이 많은 의사를 찾아가 돈을 다 허비하기까지 치료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더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21세기에게도 정복되지 않은 질병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에이즈(AIDS), 암, 치매, 당뇨, 류마티스 관절염, 정신분열증, 탈모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가 정복해야 하는 질병으로 남아 있다.

혈루병 여인은 12년의 세월을 발버둥치며 허비한 후에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기가 병에서 구원을 받을 것으로 확신했다. 이것은 어쩌다 보니 예수님께 왔다는 것이 아니다. 확신을 가지고 군중 속을 헤집고 들어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이다.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 치유가 나타났다. 여인 스스로 몸의 변화를 감지할 만큼 확실한 변화였다.
(막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의 인생에 있어서 돈이 없는 삶보다 혈루병 환자라는 사실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2년 간 물 불 가리지 않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헤맸던 것이다.

이 혈루병 여인의 12년의 고독과 방황과 고통은 예수님께 나아가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댐으로써 끝이 났다. 이것은 비단 혈루병 여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도 예수님께 나아가 주님께 접촉되는 순간 해결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삶의 열쇠가 되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에게 나아가는가? 이다. 사람을 찾아 다니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 故 김우영목사님의 설교집 {접근이냐 접촉이냐}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요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지만, 실제로 예수님께 접촉된 소수의 사람만 문제 해결을 받는다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혹은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운집(雲集)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만 의존했을 때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오직 혈루병 여인 한 사람이었다. 이 여인 한 사람만 예수님께 접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접근(Access)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접촉(Contact)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 접촉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저 예배시간에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다가 사라지는, 성전 마당만 밟고 가는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 이런 사람은 늘 접근만 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주님께 접촉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의 접촉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 혈루병 여인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다'(27)고 말씀한다. 이 말은 군중 속을 헤집고 들어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말씀이다. 은혜가 본래 거저 받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입 벌리고 누워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있었다. 그는 멀고 먼 사막 길을 지나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목적 하나 때문에 휴가를 내서 그 먼 길을 온 것이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1,500km가 넘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보셨고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인 빌립을 내시에게 보내셨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고 세례를 베풀게 하셨다.

(행8:26-27)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8: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에디오피아 내시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 먼 길을 즐거워하며 왔을까? 자기 왕을 보좌하는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온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나님과 접촉하기 위한 그의 열정은 하나님의 사역자를 그에게 파송하게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부림을 아신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부르짖음을 아신다. 혈루증 여인이 군중 속을 헤집고 들어와 옷 가에 손을 댔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알고 계셨다.

(막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우리는 예수님께로 늘 접근만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접촉 되어지기를 힘쓰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한다. 접근만 하는 것은 헛도는 것이다. 접촉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접촉해야 예수님의 능력을 내 삶에 끌어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혈루병 여인과 예수님의 접촉 사건이 오늘 우리의 경험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