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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에세이 -노아

문학n천국 2022. 8. 1. 03:02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2] 노아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된 시기에 대해 성서학자들마다 이견(異見)이 있지만 대략 B.C. 4,112년 쯤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이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는 아담의 창조로부터 1,656년이 지난 시점인 B.C. 2,456년 쯤이며, 아브라함의 출생은 노아의 홍수로부터 3백년 후인 B.C. 2,166년 쯤이라고 한다. 우리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 왕검의 고조선 건국은 노아의 홍수 후 1백여 년이 흐른 뒤이다.

다시말해 아담의 창조부터 노아의 홍수까지 1,600 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라는 위대한 역사를 행하시고 나서 오래지 않아 그 창조를 후회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것이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홍수 심판은 창조의 취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의로워서 세상에 홀로 남겨 두신 것이 아니라 노아를 새로운 세상을 여는 마중물(priming water)로 쓰시기 위함이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8절의 이 번역은 히브리 원문과는 차이가 있다. 히브리 원문을 직역하자면 “노아는 하나님의 눈들 앞에서 은혜를 찾았더라”이다. 이 말은 노아가 수동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은혜 받은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노아는 어쩌다 은혜 입은 사람이 아니라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부르짖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도구로 쓰임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方舟, Ark)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방주는 네모난 선박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방주 제작의 설계도를 지시해 주셨다.

(창6:14-16)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고페르 나무(gopher wood)는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잣나무로 번역되었었다. 그러나 고페르와 잣나무는 전혀 다른 나무로 심각한 번역 오류였다. 방주의 크기는 삼백 규빗 × 오십 규빗 × 삼십 규빗이었다. 다시말해, 약 150m×25m×15m였다. 축구장 크기의 3층짜리 목조 선박이었다.

또한 방주를 제작한 기간은 무려 120년이었다. 누가 이 오랜 세월 동안 비난과 오해를 참아가며 꾸준히 해낼 수 있을까? 노아는 120년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어떤 영적인 혼란도 겪지 않았다. 이것이 노아의 훌륭함이다. 산들바람에도 흔들리는 깃발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쓰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제작된 방주에 노아의 가족 8명과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암수 한 쌍씩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의 감독하에 준비되었던 것이다.

(창6:18-19)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홍수 기간은 총 375일이었다. 일 년 하고 열흘이다. 비는 사십 주야가 내렸지만 다시 본래의 환경으로 회복되는데 이만큼 소요된 것이다.
(창7:11-12)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창8:13-14)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방주 안에서 꼬박 일 년을 보낸 노아의 가족들과 동물들은 바깥 사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하나님이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고 계신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두렵고 떨림이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같은 시각 홍수에 갇힌 세상은 죽어가는 비명소리 뿐이었다. 죄의 결과는 이런 것이다. 훗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모습도 이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너무나 중요하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천국을 선택해 살아가야만 한다.

홍수가 끝나고 드디어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아마 그 어떤 제사보다 더 경외함으로, 더 감사함으로 드렸을 것이다.

(창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홍수 이후 350년을 더 살았다. 이 기간동안 노아에게는 한가지 흠이 될 만한 사건이 있었다. 포도주 만취 사건이다. 노아는 홍수 사건 이후 포도를 재배했다. 그리고 어느날은 포도주를 마시고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 모습을 작은 아들 함이 보고 형제들에게 가서 아버지의 추태를 고자질했다. 그러나 다른 아들들인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겉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덮어 주었다.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

술에서 깬 노아는 함에게 분노하며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축복해 주었다.

(창9:24-27)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가 비록 위대한 사람이지만 이 일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버지의 허물을 들춰낸 함의 실수 또한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의 자식을 저주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합당하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흐트러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영적인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노아의 한번의 실수를 우리가 답습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으라는 베드로의 권고를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