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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에세이 - 여호수아 (2)

문학n천국 2022. 8. 30. 18:51

성경인물 에세이 - 여호수아 (2)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13] 여호수아 - 2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길갈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던 때는 보리를 거두는 시기인 3~4월로 요단강이 범람하던 시기였다. 요단강은 평상시에는 폭이 약 27~30m이며 깊이는 약 1~3m이지만 봄에 늦은 비가 내리면 요단강 하류 부근은 강물이 넘쳐 홍수를 이루게 되어 그 폭과 깊이는 커지고 급류를 이룬다. 이 시기에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물을 밟고 서자 곧 요단강 물이 끊어져 마른 땅이 되었다. 마치 커다란 벽을 만난 것처럼 흘러내리던 강물이 뒤로 밀려 먼 곳에서 물 벽이 세워졌다. 홍해의 기적을 연상케 하는 사건이다.

(수3:15-17)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흐르던 요단 강물이 끊어지자 이스라엘은 마른 땅을 건넜다. 가나안 족속들의 눈에는 이상한 민족 하나가 자기들의 터전을 헤집고 들어 오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이상한 민족은 홍해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더니 이번에는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넜다. 가나안 족속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자기들이 지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desperation)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은 가나안 땅 첫 번째 성인 여리고(Jericho) 성을 믿어 보려고 했다. 여리고성은 그야말로 철옹성(鐵甕城)이었다. 여리고성에서 잘 막아준다면 자신들의 평화를 빼앗기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은 온 맘으로 여리고 백성들이 잘 싸워주기를 응원했을 것이다.

여리고는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약 8~9㎞, 길갈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3㎞, 사해에서 북쪽으로 약 12㎞,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여리고성은 외벽과 내벽, 두 겹으로 되어 있으며,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 벽돌벽을 세웠으며, 또한 지상으로부터 높이가 14m 정도 되는 둑 위에 다시 높이 솟아오른 내성벽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고고학 발굴로 밝혀졌다. 즉, 난공불락의 이중 벽 구조로 된 성으로서 양식만 풍부하다면 수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여리고성의 백성들은 이미 이스라엘의 소문을 들었기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여리고성 안에는 샘이 있어서 물이 충분했고, 보리를 수확한 때여서 양식 또한 넉넉했었다. 거기다가 구조적으로 철옹성이었다. 성문만 잘 걸어 잠그면 다소 유리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여리고는 심리전에서는 이미 패색(敗色)이 짙었다.

(수5: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수6: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아무리 최신 무기들을 갖추고 있어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전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여리고성에는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처럼 싸움의 흥을 돋우는 장수도 없었고, 마땅한 대비책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전의를 상실한(loss of war)상태가 되었다.

반면 이스라엘은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100%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 씩 엿새 동안 돌고 칠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돈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다함께 힘찬 함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 전략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다.

(수6:3-5)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군사학자들이 이 본문을 읽으면 혀를 끌끌 찰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전략이냐며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여리고성이 이 전략에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이스라엘은 엿새 동안 매일 여리고성을 한 바퀴씩 돌았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불었고, 여호와의 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여호와의 궤 앞 뒤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행진하며 궤를 호위했다. 그리고 칠일 째는 일곱 바퀴를 돌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을 매일 숨죽이며 지켜보았을 여리고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왜 공격하지 않고 성을 돌기만 하지? 칠일 동안 반복하는 무음(無音) 행진이 과연 위협적일까? 홍해 바다를 말리고 요단강을 말려서 건넌 사람들이 왜 시간을 지체할까? 등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창조적인 전략처럼 보이는데 당시에 지도자 여호수아는 왜 이런 의문을 갖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달리 여호수아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하나님의 방법을 온전히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일곱 째 날 성을 일곱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휘에 따라 여리고 성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힘찬 함성을 질렀다. 그랬더니 그 견고하던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 민족의 3.1절 '대한독립 만세' 같은 함성이 여리고 성을 진동하게 했고 곧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학자들은 여리고 성이 무너진 원인에 대해 '공명에 의한 지진'이라고 설명한다.

강철이나 콘크리트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저마다 고유한 진동수를 갖고 있는데 이 진동수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면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는데 이를 공명이라고 한다. 이 공명이 계속 반복되면 아무리 강한 물체라 해도 파괴될 수 밖에 없는 위력이 발생한다고 한다.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린 것은 백만 명 이상이 일주일 동안 성을 빙둘러 행진함으로써 진동에 의한 공명이 발생했고 함성 소리에 의한 지진으로 성 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린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은 기생 라합(Rahab)의 가족들 뿐이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보낸 정탐을 라합이 숨겨 주었기 때문이다.
(수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그리고 훗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에서 기생 라합의 후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스2:34)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느7:36) '여리고 자손이 삼백사십오 명이요'

여호수아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이었던 여리고 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군대의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이 여리고 전쟁 가운데 여호수아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보통의 장수라면 지휘한답시고 큰 소리를 내었을텐데 여호수아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지도력은 우렁찬 목소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위대한 지도력은 여호수아처럼 먼저 순종하고, 먼저 행동하는 모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