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룻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14] 룻
사사시대(B.C 1390?-1050?)의 어느 한 시점에 큰 흉년이 찾아왔는데 이때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주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는 나오미다. 그리고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유대 땅에서 모압 땅으로 인생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압 땅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만다. 그리고 두 아들은 그 땅 모압 여자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한다. 아마도 다시 유대로 돌아갈 계획은 없었던 것 같다. 율법에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가까운 시일에 돌아올 생각이었다면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함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자초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며느리들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다. 그러나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두 아들마저 죽고 만다. 성경은 이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하나님께서 이들을 죽이셨다고 추측할 수도 없다. 이들의 죽음은 영원히 미제사건(未濟事件, cold case)이다.
(룻1:3-5)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이 모든 불행이 십 년 동안 나오미의 가정을 덮쳤다. 나오미의 절망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오미는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렸다.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잘되면 내 탓, 잘 안되면 하나님 탓을 한다.
(룻1:13)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룻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이렇게 괴로운 십 년이 흐르고 나오미는 유대 땅에 풍년이 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래서 나오미는 비록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외국 땅에서 남편도 자식도 다 잃고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며느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들들은 다 죽었고 며느리들은 아직 젊기에 친정으로 돌려 보내는 것이 옳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시어머니의 마음을 읽었는지 오르바는 주저하지 않고 자기 민족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유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룻은 남편 없는 시댁이지만 죽은 남편의 아내로서 꿋꿋이 살아가기로 한다.
(룻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룻을 설득해 친정으로 보내려던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의 뜻밖의 신앙고백 앞에 룻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기로 한다.
(룻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방 땅 모압 여인이었던 룻(Ruth)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고품격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것은 나오미 가족들의 영향일 것이다. 나오미 가족은 모압 땅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유일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룻은 스스로 전도된 것이다.
외국 땅에서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는 물론 이질적(異質的)인 풍습 또한 정착민을 힘들게 한다. 특히 나오미의 가정은 흉년을 피해 내려온 그래서 삶이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겪었을 팽팽한 삶의 긴장은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흉년 때문에 고향을 떠나 모압에 정착한 나오미 가정에서 룻은 신앙으로 고난을 견디어 내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룻이 유대인 가정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 가운데 이런 영적인 도전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룻은 나오미를 따라 유대 땅에 돌아왔다.
나오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온 성읍 사람들이 나오미를 맞으러 나왔다. 얼핏 보면 환영하는 모양새이지만 사실은 얼마나 비참해져서 돌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나오미는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으로 가더니 소중한 것을 다 잃고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며 입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나오미는 이제 그들이 알던 십 년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불행의 아이콘(icon)이었다.
(룻1: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이렇게 룻은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들어와 살게 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이 되었지만 나오미와 룻은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룻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은 곡식 이삭을 줍는 일이었다. 밭에서 추수하는 사람들 뒤를 따라가며 곡식단에서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그것으로 양식을 삼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룻2:5-7)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을 현숙한 여인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룻에 대해 이방인이라는 편견을 갖지 않았다. 룻이 과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모압 땅에서 유대 땅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효부(孝婦)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난 보아스와 룻은 나오미의 소망대로 재혼하게 된다. 당시에는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미망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죽은 친족의 아들로 삼게 하는 법을 말한다. 대(代)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룻3:11)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룻기는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렇게 모압 여인 룻은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다.
(룻4:21-22)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룻이 유대인이 되는 과정을 보며 느끼는 것은 룻은 신의(信義)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죽었으니 오르바처럼 아무 죄책감없이 시어머니를 두고 떠나버리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기고자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의리(義理)를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룻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룻은 먼 유대 땅까지 와서 이삭을 주워가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룻은 신앙 뿐 아니라 삶으로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룻은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