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사무엘 (3)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18] 사무엘 - 3
모세와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은 사사(士師)가 통치하는 시대를 살게 된다. 사사시대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한 사람이 국가적 위기 때에 열 두 지파를 통솔하는 신정체제(神政體制, Theocracy)이다. 그리고 사사는 왕정 체제처럼 세습되는 권력이 아니다. 임시직(臨時職)이다. 하나님께서 어느 지파 누구를 다음 사사로 선택하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사사기를 보면 열두 명의 사사들의 임기도 제각각이다. 사사 시대를 약 삼백 여년이라고 가정했을 때 에훗(80년), 옷니엘 드보라 기드온(각 40년), 삼손 돌라 야일(각 20년쯤), 입다 입산 압돈(각 10년 미만) 등이다. 사사는 평상시에는 재판을 담당했고, 국가 위기 때만 군사적 지휘권을 행사했기에 절대권력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사 통치에 대해 백성들 가운데서 부정적인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이웃 국가들처럼 왕정 체제를 사모하게 되었다. 결국 백성들의 불만은 왕정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본래 왕정 체제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삼상8:6-7)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지만 백성들의 요구는 갈수록 거세졌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왕을 세울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첫 번째 왕으로 지명된 사람은 베냐민 지파 사울이었다. 당시는 사무엘의 나이가 많아 그의 아들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대리 통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들들은 품행이 나빠서 백성들에게서 권위를 상실한지 이미 오래였다.
(삼상8:2-3)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런 이유로 백성들은 사울의 등장에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사울은 깨끗하고 참신한 새로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울의 이야기는 아버지 기스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다니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울은 아버지의 명을 따라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 에브라임 땅으로, 베냐민 땅으로 두루 찾아 다녔다. 순종적인 사울의 모습을 부각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삼상9: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사울이 암나귀들을 찾기 위해 온 땅을 두루 헤맬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곧 사울을 만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라고 하셨다.
(삼상9:15-16a)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아들들인 요엘과 아비야가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식들에 대한 염려때문에 아멘이 망설여지는 순간인데 놀랍게도 사무엘은 자기 아들들의 앞 날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를 내려 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사무엘은 보장성 보험(security insurance)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있는 한 그들의 앞길을 막을 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엘은 이미 내려놓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엘은 자식들의 미래보다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는 것을 더 기뻐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사울을 이스라엘 초대왕으로 세우는 일에 힘썼다.
(삼상10: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이스라엘 왕이 된 사울은 암몬 족속의 침략을 잘 막아내 첫 전쟁에서 승리를 맛보게 된다. 백성들의 왕에 대한 신뢰도 수직 상승했다. 사울왕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소집한 군대의 수는 삼십 삼만 명이었다. 하지만 거의 다 예비군이었다.
(삼상11: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이에 자신감을 얻은 사울은 이스라엘의 숙적(an old enemy)인 블레셋을 치고자 한다. 당시 블레셋은 근동지역의 패권을 쥔 강대국이었다. 소년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인 골리앗을 쳐 죽인 사건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이 블레셋과의 전쟁은 사울과 아들 요나단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 사이에 사전 협의된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 같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제사를 변명할 때 정한 날에 당신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선제 공격함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
(삼상13:11)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삼상13: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당시 사울왕이 거느린 상비군은 이천 명이었고 요나단이 거느린 상비군의 수는 천 명이었다. 이렇게 삼천 명이 상비군(常備軍, Standing army) 곧, 이스라엘군의 현역이었다. 나머지는 전쟁 때 긴급 소집되는 예비군(豫備軍)이었다.
(삼상13: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블레셋 대군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믹마스에 진을 쳤을 때 사울왕은 길갈에 있었다. 사울은 길갈에서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출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사무엘은 약속한 일주일이 다 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사울은 백성들이 두려움때문에 흩어지는 것을 보고 조급해졌다. 그래서 제사장 외에는 제사를 집례할 수 없음을 알았음에도 사울이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집례하고 말았다.
(삼상13: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는 오직 제사장만 집례할 수 있었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침범할 수 없었다. 사울은 끝까지 사무엘을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약속한 일주일째 되는날 사울이 번제를 드리고 났을 때 사무엘은 도착했다. 빠르지도 않았지만 결코 늦은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울의 조급함이었던 것이다.
역대하 26장에 웃시야 왕은 나라가 강성해지자 교만해져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직접 분향하다가 문둥병이 들어 죽는날까지 별궁에 갇혀 지냈다고 말씀한다. 이와같은 실수를 사울왕이 범한 것이다.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결국 이 죄때문에 사울은 왕위를 아들 요나단에게 물려주지 못한다. 다윗이 사울왕을 이어 두번째 왕으로 등극하는 길을 열어 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는 다윗과 후손들이 다스리는 다윗왕가가 된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지만, 다시 자기 손으로 사울왕을 폐하고 다윗왕을 세우는 아픈 역사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사무엘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