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솔로몬 (1)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23] 솔로몬 - 1
솔로몬은 다윗왕의 19명의 아들들 가운데 10번 째 아들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는 서열이다. 그럼에도 다윗이 많은 아들들 가운데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밧세바를 가장 사랑해서 그의 아들인 솔로몬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상22:9-10)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은 밧세바와 솔로몬을 편애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할 사명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크게 사랑하셔서 '여호와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여디디야라는 애칭(愛稱)을 주셨다.
(삼하12:24-25)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솔로몬은 하나님의 큰 기대 속에 태어나 스무 살 청년 때에 왕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홀로 서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솔로몬의 출발은 아주 산뜻했다. 아버지 다윗이 주변 정리를 다 해 주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스스로 정치력을 발휘하기엔 너무 어렸고 주변에 협력할 인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생전에 왕권을 이용해 솔로몬을 왕좌에 앉혔다. 반발이 예상되는 선택이었다.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할 때 그의 나이 이십 세였다. 당시 근동지역은 다윗왕의 정복 전쟁으로 인해 가나안 부족들 대다수가 이스라엘에 굴복하여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강대국이었던 애굽은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던 제 21왕조 시대였다. 찬란했던 과거 애굽의 영광은 빛 바랜 사진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복 형들인 압살롬과 아도니야의 반란이 진압되고 반역에 동참한 요압 등 주요 인물들의 피의 숙청이 단행된 후 왕이 되었기에 하나님께 연약한 자신을 의탁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신앙의 표시로 일천번제를 계획한다. 일천번제에 관해서는 날짜 기간을 천 일로 보는 주장도 있고, 번제물 숫자를 일 천으로 보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학자들 대부분의 의견은 번제물 숫자 일 천을 일천번제로 보고 있다.
민수기 28장에 의하면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常燔祭) 제물은 일 년 된 숫양 두 마리였다.
(민28:3-4)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상번제(常燔祭)의 제물이 매일 숫양 두 마리 였다면 일천번제(一千燔祭)는 500일 분량의 제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아주 많은 분량의 제물을 제단에서 불살라 드린 것이다. 일천번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제사의 개념이었다. 그만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의미가 강했고, 왕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보여준 제사였던 것이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작정하고 예루살렘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기브온 산당으로 간다.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기브온 산당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기브온 산당은 많은 제물을 한 번에 불살라 드릴만큼 넓은 공간이었다.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에 꿈으로 응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백지수표(白地手票, a blank check)를 내미셨다. 무엇이든 구하면 주시겠다는 뜻이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대성공이었다. 제사의 대혁명이었다. 생축 몇 마리씩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천 마리 제물을 불살라 드림으로 믿음의 크기를 가늠하게 했다.
(왕상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했다. 곧 백성들의 말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전무후무한 지혜를 솔로몬에게 주셨다. 솔로몬의 그 지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왕상4:29-33)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 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솔로몬의 지혜는 분별력 뿐만 아니라 백과사전 같은 지식이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솔로몬에게 있었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의 지혜를 증명하는 사건을 소개한다. 두 창녀의 이야기다. 두 창녀가 함께 살고 있는데 사흘 간격으로 출산하였고 두 아기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죽자 살아있는 아기가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다 솔로몬의 재판을 받는 사건이다.
(왕상3:18)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왕상3:20)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증인이 없는 사건이다. 아기 하나를 놓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우기고 있다. 요즘처럼 과학수사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솔로몬에게로 향했다. 솔로몬은 살아 있는 아기를 둘로 잘라서 두 여자에게 절반 씩 주라고 판결했다.
아기를 둘로 나누어 두 여자에게 준다는 것은 초등학생에게서나 나올 법한 판결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둘로 나누는 즉시 최악의 판결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물증을 찾아낸다. 바로 모든 어머니들이 가지고 있는 모성애이다. 모성애는 가공되거나 조작될 수 없는 신성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명령이 떨어지자 생모의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다. 친권(親權)을 포기하더라도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모성애가 터져 나온 것이다.
(왕상3: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있을까? 모성애는 속임수로 거짓 연기할 수 없다. 생모(生母)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친권을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가짜 엄마는 공평하게 나누자고 한다. 아이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솔로몬은 아이에 대한 친권을 포기하겠다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통곡하는 여인이 아이의 친엄마라고 판결했다. 솔로몬의 판결을 들은 모든 백성들은 두려워 했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왕상3:27-28)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이를 나눠 내 것도 되지 말고, 네 것도 되지 말게 하자' 던 악한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처분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아무 일 없던 것 처럼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아이와 친엄마의 삶을 요동치게 한 이 여인으로 하여금 평생 죄값을 치르게 했을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