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솔로몬 (3)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
[25] 솔로몬 - 3
중국 역사에 진시황은 후궁이 만 명이었고, 한무제는 만 팔천 명이었다고 한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설립한 사람이고, 한무제는 동서 교역 통로인 비단길, 곧 실크로드(Silk road)를 개척한 사람이다. 이들이 지금도 구설(口舌)에 오르는 것은 보통 남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솔로몬은 왕비인 애굽의 공주 외에도 후궁 칠백 명과 첩 삼백 명을 두었다. 이들 가운데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족속의 여인 등 이방 여인이 상당수였다. 아마도 정치적 목적을 위한 혼인 외교였던 것 같다.
(왕상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아내가 많을수록 남편을 더 좋은 길로 나아가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가 많을수록 남편이 더 완전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부족함을 채워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솔로몬도 이런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몇 명 쯤은 있었을 수도 있다. 천 명이나 되는 아내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솔로몬을 보필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솔로몬의 인생은 천 명의 아내들로 말미암아 나락(那落, hell)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어느 한 개인의 평가가 아니라 성경의 평가, 곧 하나님의 평가이다.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솔로몬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임에도 인생실패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방 여인들 때문이었다. 천 명이나 되는 부인들의 신앙이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왕의 혼인이었기에 신앙적인 부분에서는 서로 화합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솔로몬이 천 명의 부인들을 여호와의 신앙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당대 주변 모든 나라들보다 더 강한 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의 권력이나 그의 지혜로 충분히 부인들을 개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종은 커녕 솔로몬 자신이 여호와 신앙에서 떠나고 말았다. 신앙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솔로몬은 모든 부인들의 신앙에 자신의 신앙을 양보하고 말았다. 요즘 표현으로 부인들 때문에 신앙을 팔아 먹고 말았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끝까지 헌신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반대로 이스라엘 왕이 이방신들을 위해 헌신하고 말았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방 부인들이 오히려 솔로몬을 이방 종교로 개종시켰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왕상11:7-8)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이방신들을 위해 직접 나서서 산당을 지어주고 이방신 제사에 필요한 물품까지 지원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의 처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솔로몬은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배워야 한다. 나오미는 흉년을 피해 유대 땅에서 모압 땅으로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이주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을 모압 여인들에게 장가를 보냈다. 그러나 불행이 나오미 가족을 타킷(target)으로 찾아왔다. 남편과 두 아들이 정착한 지 십 년도 안되어 모두 죽었다. 아마도 병사(病死)인 듯하다.
(룻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룻1:4b-5)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나오미는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그러나 두 며느리를 유대 땅으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아들들이 모두 죽었고 손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느리 가운데 오르바는 친정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유대 땅으로 돌아가기를 고집했다. 나오미는 룻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백하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부분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룻의 신앙이 칭찬 받아야 마땅하지만 나오미의 신앙도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오르바처럼 풍비박산(風飛雹散)난 시댁을 미련없이 떠나는게 일반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시댁의 모든 불행을 함께 겪었으면서도 시어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룻이 나오미에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나오미의 신앙이다.
(룻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나오미는 아마도 룻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 같다. 여호와 신앙으로 사는 삶의 의미나 행복을 전이시켜 준 것 같다. 나오미는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신앙적으로 굳게 서 있었다고 보여진다. 룻은 이런 나오미를 보며 시어머니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한 것 같다.
(룻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팔자 탓을 하거나 운명 탓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징벌을 겪었다고만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어찌하던지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솔로몬은 사십 년의 통치 기간 중 앞선 이십 년은 여호와 신앙으로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이후 이십 년은 참 신앙을 팽개치고 이방신을 위해 세월을 보냈다. 그의 많은 잠언과 신앙고백들은 과거의 언행들이 되고 말았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는데 7 년, 그리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는데 13 년을 수고했다. 자신의 통치 기간의 절반을 건축 사업에 올인했다. 백성들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백성들에게 자긍심은 선물했을지언정 자신의 신앙을 위한 것은 결코 되지 못했다. 성전을 건축한 이후 타락했으니 어떻게 평가받아야 마땅할까? 오히려 성전 건축의 노하우(know-how)가 이방인 아내들의 예배처소를 짓는데 사용되고 말았다.
솔로몬은 업적이 많은 반면 죄와 허물도 많은 사람이 되었다. 구약 열왕기서는 숨기지 않고 솔로몬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서는 솔로몬의 허물은 의도적으로 삭제하고 업적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의 저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일화 가운데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일은 유명하다.
(왕상10:1)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왕상10:3)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한 스바 여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오늘 우리 교회에 대한 소문이, 우리 주님에 대한 소문이 이렇게 열방으로 퍼져 나가고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한다. 다만 우리가 할 것은 주님을 온전히 붙드는 것이다.
(왕상10:9)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