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에스더와 모르드개 (2)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36] 에스더와 모르드개 (2)
에스더(Esther)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Mordecai)는 왕궁 문지기이다. 왕궁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은 보안요원인 모르드개 앞을 지나야 했다. 모르드개의 가족 관계는 알려지지 않아서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몇인지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다. 다만 그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사촌 여동생 에스더를 데려다 양육하고 있었다.
모르드개는 어느날 왕의 내시인 빅다나와 데레스의 왕을 살해하려는 그들만의 모의(謀議)를 알게 된다. 모르드개는 곧 이 사실을 왕실에 고발(告發,accuse)한다. 모르드개는 공익제보자(Deep Throat)이다. 반역자들은 처형되었다. 하지만 모르드개에 대한 포상(prize)은 없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도 조용히 잊혀져간 사건이 되었다.
반면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한 하만의 계획은 순조로웠다. 이미 각 지방까지 왕의 조서(dossier)가 하달되었다. 결국 12월 13일에 모든 유대인들은 죽어야만 했다. 억울하지만 왕의 명령이었다.
(에3:5-6)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에3:13)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모든 유대인들이 죽을 위기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모르드개가 총리 하만에게 매번 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믿음으로 해석하기 전에 세상의 관례를 따르면 모르드개는 하만 총리에게 몸을 굽혀 절을 하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 공직 사회에서 말단 공무원이 최고위층 총리에게 머리 숙여 절하는 것은 신앙의 문제 이전에 그저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어렵지 않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하만은 모든 유대인들을 싸잡아 반항적인 족속으로 규정하고 죽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왕의 조서는 밀서(密書)가 아닌 내용을 공개한 공지사항(notice)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간담(肝膽)이 서늘해졌다.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채 일 년도 남지 않았다. 죽을 날을 받아놓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이 얼마나 버겁고 두려웠을까? 땅으로 꺼지지 않는 한 유대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같은 조서의 내용을 알리고 왕에게 은혜를 구하라고 통보한다.
(에4:7-8)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하지만 에스더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왕에게 삼십 일 동안 부름을 받지 못했기에 허락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죽임을 당하거나 폐위(廢位)될 수 있는 중대한 허물이기 때문이다.
(에4: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모르드개는 에스더 왕후의 안위보다 민족의 구원이 더 시급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에스더에게 지금 행동할 것을 매몰차게 몰아 부치고 있다. 매정하리만큼 질책한다.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의 충격요법(shock therapy)이 통했는지 에스더는 중대한 결단을 선언한다. 삼일 금식 후 왕에게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적 모험을 다짐한다.
(에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는 삼일 금식 후 왕에게 나아간다. 왕이 부르지 않았기에 자칫하면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다. 삼일 동안 꾸미고 단장해도 부족할텐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금식을 했으니 이쁘게 보이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그런데 보통의 생각과 달리 멀리서 에스더를 바라본 아하수에로 왕이 그만 에스더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 말로 훅 갔다. 그리고 왕은 에스더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에5:1-3)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에스더는 왕께 자기가 베푸는 잔치에 왕과 하만 두 사람이 와 주기를 청한다. 에스더는 이틀 동안 잔치를 베푼다. 그리고 첫째 날 잔치가 끝난 밤에 왕은 잠이 오지 않자 내시에게 역대일기를 읽게 한다.
(에6:1-3)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아하수에로 왕은 지난 날 자신의 목숨을 위기에서 건져 낸 모르드개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한다. 그래서 총리인 하만을 불러 마땅한 상급이 무엇인지 자문(諮問,consult)을 구한다. 하만은 왕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착각하여 자기가 누리고 싶은 명예를 말한다
(에6:7-9)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에게 왕궁 문지기 모르드개를 데려다가 내게 말한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한다. 하만이 헛다리를 짚은(bark up the wrong tree) 것이다. 하만이 죽이고 싶어하는 모르드개를 왕은 오히려 높이고자 한 것이다.
(에6: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고 초조해지는 상황이다. 일이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하만은 굴욕적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했기 때문이다.
굴욕감을 다스리고 있을 때 왕후 에스더가 주최하는 잔치에 둘째 날도 초청되었다. 하만은 총리로서 왕 곁의 자리를 지켰다. 아하수에로 왕은 잔치가 너무 즐거운 나머지 왕후 에스더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한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에스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에7:2)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에스더는 나라의 절반이 아닌 자신의 목숨과 유대인들의 목숨을 왕께 구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와 유대인을 죽이려는 자가 누구인지 묻는다.
(에7:3-4)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분명 하만에게 유대인들을 12월 13일 도륙하라는 조서에 직인을 찍었었다. 하지만 에스더 왕후가 유대인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왕은 왕후의 목숨을 노린 하만을 나무에 달아 죽이도록 명령한다.
(에7:9-10)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하만이 죽자 왕은 모르드개를 하만의 자리에 앉혀 총리가 되게 한다. 그리고 유대인들 또한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8:1-2)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
위기에 강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위기 앞에서 의연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본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위기에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밟고 일어서서 포효(咆哮,roar)한다고 믿는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고백은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내맡김의 고백이다. 결국 온전한 내맡김이 강함의 비결인 것이다. 온전히 내맡김이 승리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