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다니엘 (1)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39] 다니엘 (1)
다니엘은 남유다의 멸망이 시작된 B.C.605년 제1차 바벨론 포로 때부터 바벨론 제국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538년까지 60여년 동안 바벨론에서 활동한 선지자이자 정치가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던 해는 B.C.605년으로 그 해에 애굽과 바벨론 간의 유명한 갈그미스(Carchemish) 전투가 있었다. 갈그미스 전투는 세계 역사의 분수령(Turning Point)이 된 네 번의 전투(페르시아와 그리스 전쟁, 십자군 전쟁, 워털루 전투, 갈그미스 전투) 가운데 하나이다. 갈그미스는 터키와 수리아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유브라데 강 근처의 지역이다.
당시 남유다는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었고 애굽왕 바로 느고(Necho)에 의해 즉위하게 된 남유다 제18대 왕 여호야김(B.C.609-598)이 다스리는 시대였다. 그러나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에 패배함에 따라 애굽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남유다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미움을 사게 되어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다니엘이 바로 이 포로 행렬(procession)에 속해 있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는 15~ 20세 쯤 되었을거라 한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는데 그 인원은 약 200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유대인의 대부분이 끌려 간 것이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다른 주장은 예레미야 52장의 기록을 근거로 약 사천 육백 명이라고 한다.
(렘52:28-30)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바벨론은 유대 땅에 아주 미천한 소수의 백성들만 남겨 두었다. 약 2 만명이다. 그리고 70년 포로 기간이 지나 유대 땅으로 복귀한 유대인들은 5만여 명이었다. 극히 소수만 돌아온 것이다. 유대인의 상당수는 돌아오지 않고 그 땅에 정착했다. 그래서 사천 육백 명이 포로로 갔다는 것은 예레미야가 포로의 일부만 계산에 포함한 것으로 실제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구약성경 사무엘서는 다윗 왕 시절에 유다 지파의 군사가 50만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들의 숫자이므로 실제 유다 지파의 인구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삼하24:9)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그래서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된 숫자는 유대 땅에 남겨진 소수를 제외한 200만 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포로로 잡혀 온 유다의 왕족과 귀족 가운데서 젊은 청년 인재들을 기용(起用)하고자 한다. 이또한 국정운영의 자문을 위한 등용(登用)이라기 보다 바벨론의 박수와 점쟁이 같은 인물들을 키워내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유대 왕족 가운데서 외모가 출중(出衆)할 뿐 아니라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몇 사람을 환관장에게 선발하게 하고 그들을 삼 년 동안 교육시키라고 명령한다.
(단1:3-5)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단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이렇게 유대 왕족과 귀족의 자녀들 가운데서 선별을 거쳐 느부갓네살 왕에게 발탁된 사람들은 네 명이었다. 우리가 흔히 다니엘과 세 친구로 지칭하는(designate) 사람들이다.
(단1:6-7)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어쩌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특혜를 입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기뻐하거나 자랑스러워 한 것 같지는 않다. 조국을 멸망시킨 이방 왕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영적인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이 공급하는 기름지고 훌륭한 음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은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이 곧 자기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환관장에게 말한다. 믿음없이 생각하면 다니엘은 지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이런 영적인 항변(抗辯)은 다행히 환관장의 미움을 사지는 않았다. 환관장이 다니엘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단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은 채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열흘 동안 채식을 먹고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과 비교해 달라고 간청한다.
(단1:12-13)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환관장은 다니엘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리고 열흘 뒤 결과는 채식만 주었음에도 다니엘과 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먹은 이들보다 더 피부가 윤택해져 있었다. 그리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먹지 않고 삼 년 동안 채식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단1:14-16)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다니엘의 경건은 화려하게 포장된 어떤 것이 아니었다. 다니엘은 이방 사람들 앞에서 거창하게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을 생각함으로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고 채식을 고집했을 뿐이다. 다니엘의 경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난을 돌아보는 경건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친구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단1: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당시의 모든 학문을 통달하게 하셨다. 특별히 다니엘에게는 환상과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셨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학문도 하나님의 학문인 신학(神學,theology)을 뛰어넘지 못한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세상 학문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고백한다.
(빌3:7-9a)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바울은 당대 최고의 석학(碩學, scholar)이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명문인 가말리엘 스쿨(Gamaliel School) 졸업생이었다. 그런 그가 세상 모든 학문을 해로운(harmful) 배설물로 평가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진리만이 참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청년 다니엘은 비록 포로의 신분이지만 자기의 정체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름진 우상의 식탁을 멀리하고 채소 반찬만이 주어지는 삼시세끼(three meals)에 오히려 만족하고 감사했던 것 같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것은, 그리고 결국 세상 으뜸가는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이런 믿음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 유불리(good or bad)를 따지지 않는 믿음,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믿음이 다니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