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베드로 (1)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48] 베드로 (1)
베드로는 그 이름이 성경에 160회 이상 언급되는 인물이다. 베드로의 고향은 벳새다며(요1:44), 가버나움에서 어부로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베드로의 결혼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자로 부름 받기 전 이미 가정을 꾸린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는 장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어쩌면 처가살이 하는 평범한 가장(家長)이었다(마8:14, 고전9:5).
어느날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와 함께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첫 대면한 날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아가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은 신앙인 입장에서는 반가운 표현이지만, 요즘처럼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 범죄가 많은 시대에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줄 수도 있다고 본다.
(마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어느날 예수님은 제자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과 함께 베드로의 가정을 방문하셨다. 여기서 열병(Fever)은 장티푸스(typhoid fever)나 콜레라(cholera)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예수님이 장모를 향하여 열병을 꾸짖으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인이 즉시 일어나 수종들었다고 말씀한다.
헬라어 원어성경의 표현으로 보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은 중증이었던 것 같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 출신인데 의사가 보기에 중한 열병이었다고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베드로의 장모의 상태는 꽤 중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 중증(重症)이나 경증(輕症)은 중요하지 않다.
(눅4:38-39)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베드로의 장모가 치유받은 일은 그 가정에 분수령(a watershed)이 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온전히 헌신된 가정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도 바울의 말을 토대로 했을 때 베드로는 그의 아내와 함께 주님께 헌신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 열병 치유사건이 그 시발점(starting point)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전 9:5)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베드로)와 같이 믿음의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베드로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복음전도에 동행했던 것 같다. 아마도 짐작컨대 처음에는 남편 베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생계인 그물을 내 팽개치고 예수라는 젊은 랍비를 쫓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다 친정어머니가 중한 열병으로 고통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열병을 치유하시는 것을 통하여 비로소 예수님을 알게 되고 남편의 헌신을 이해하게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치유 사건을 계기로 베드로의 아내도 주님께 헌신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초대교회 클레멘트(Clement) 교부는 베드로는 전도여행 때 항상 그의 아내와 함께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결국 베드로의 아내는 순교 당했는데 남편 베드로 앞에서 죽어갈 때 베드로가 아내에게 오직 주님만 생각하라며 권면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의 아내의 이름은 컨콜디아(concordia) 혹은 페페튜어(perpetua)라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베드로에 대한 선입견은 무식하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아내사랑 가족사랑에 있어서는 상당한 식견(識見, insight)이 있었고 또 실천했던 사람인 것 같다.
(벧전3:1-4)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이렇게 신앙적으로 정리한 것을 보면 베드로 부부는 실제로 이렇게 살았다고 보여진다. 베드로의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은 다혈질(hot-tempered)의 뱃사람이었을지언정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는 꽤 괜챦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자긍심(pride)이 없으면 다른 남편들에게, 아내들에게 이런 권면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베드로가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이들과 비교되는 베드로만의 특징이 무엇일까? 마태복음 14장의 이야기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오천 명의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신 뒤 무리들을 돌려 보내셨다. 제자들 또한 배를 타고 먼저 바다 맞은 편 가버나움으로 가게 하신 뒤 혼자 산에 기도하러 가셨다.
(마14:19-21)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14:22-2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바다 위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이 우연한 자연현상인지 아니면 사탄이 제자들을 죽여 복음전도를 막기 위함인지 성경은 해석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의 전도활동에 사탄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방관만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14:24-25)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고난 당하는 현장에 오셨다. 이때 시각은 밤 사경, 곧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였다. 예수님은 모터보트(motorboat)를 타고 오신게 아니다.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십여 리, 곧 4km를 바다 위로 걸어 오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제자들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유령(ghost)이라고 오해했다. 그도 그럴것이 발이 바다에 빠지지 않고 걷는다는 것은 중량(weight)이 없는 영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마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님께서는 놀라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어떤 설명도 하시지 않는다.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는지 가르치지 않으신다. 다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자들도 묻기를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쭌다.
(마14:28-29)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기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명령해 주시기를 구했다. 자기 스스로는 걸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걸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참 기발한 발상의 전환인 것 같다. 예수님이 말씀만 해주시면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오직 베드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정말 기적처럼 바다 위를 걸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다의 풍랑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 몸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예수님이 곧 손을 내밀어 잡아주셨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물 속에 빠져 들어간 원인은 의심이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를 걸을 때는 빠지지 않았는데 요동치는 파도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물 속에 빠져 들어간 것이다. 아마 베드로는 잠깐동안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 외에 유일하게 물 위를 걸었던 인물이 되었다. 물론 물 위를 걸어서 수제자가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주님 말씀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이 귀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록된 글로 읽어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정작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에서 그 바다 위를 걷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상상은 아닌 것 같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왜 베드로가 수제자여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사람은 없다. 다만 여러 사람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사람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믿음과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아마도 베드로의 권위를 인정해 주신 이 성경구절이 아닐까 싶다.
(마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베드로는 순교할 때 예수님처럼 반듯하게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반대하고 스스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기를 구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 베드로에겐 뭔가 좀 남다른 면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