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에세이 - 스데반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51] 스데반
남유다가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70년이었다. 그리고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하고 고레스왕이 포로 해방 칙령(royal order)을 내렸다(B.C.538). 모든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해방 선언이었다.
하지만 유대 땅으로 복귀한 유대인은 많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은 지도층 4,600명을 비롯하여 수십 만명으로 추정되지만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은 겨우 5만 명을 조금 넘었다. 대부분의 유대인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지역에 넓게 정착해 살았다.
이렇게 한 민족이 자의든 타의든 다른 지역에 이주하여 집단 생활하는 것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 부른다. 이 디아스포라의 기원은 유대인의 바벨론 포로이다.
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기원전 3세기부터 지중해 지역을 장악한 헬라(그리스) 문화권으로 이주해 살면서 그들의 통용어인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그리고 해외에 살던 유대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살기 시작했다. 이들은 혈통상 같은 유대인이지만 헬라어를 모국어로 썼다. 그래서 이들을 헬라파 유대인이라 부른다.
반면 히브리파 유대인은 남유다가 망할 때 끝까지 유대 땅에 남아서 살던 유대인의 후손들로서 이들은 히브리어(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교회 내에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유인즉 교회에서 매일 받는 구제(aid)에서 헬라파 과부들만 소외되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교회에서 어려운 교인들을 위해 생활비를 지원했는데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던 것이다. 특별히 해외에서 귀환한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는 예루살렘에 일가친척이 없는 가난한 과부들이 섞여 있었는데 이들이 철저히 외면 당한 것이다.
(행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그래서 열두 사도가 모여 이 문제를 의논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구제(救濟)를 전담할 직분자를 따로 세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직분자가 일곱 집사(執事)이다. 이들은 안수집사이다.
(행6:5-6)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일곱 집사가 세워짐으로서 사도들은 본래 사명인 말씀사역과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행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일곱 집사 가운데 사도행전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인물은 스데반(Stephen) 집사와 빌립(Philip) 집사이다. 빌립 집사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를 전도한 사람이다. 초대교회 역사가들에 의하면 이 내시는 에디오피아가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빌립 집사에게는 네 딸이 있었는데 모두가 예언자였다.
(행8:26-28)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8:35,38)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행21:8-9)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그리고 빌립 집사와 함께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바로 스데반 집사이다. 스데반 집사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Martyr)라는 타이틀(Title)을 갖고 있다.
스데반 집사가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복음을 증거하자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스데반에게 집중되었다. 그들 중에는 스데반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스데반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인 자유민들과 논쟁을 하게 되었다.
자유민들이란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정복당했을 때 노예로 끌려갔다가 해방된 이들의 후손이다. 자유민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유대인의 회당과는 구별된 회당을 만들었는데 종교관은 유대인들의 회당에 모이는 사람들과 동일했다.
(행6:8-9)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하지만 자유민들은 논쟁에서 스데반을 이기지 못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데반을 모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데반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죄로 공회에 고발했다.
(행6:11-12,14)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스데반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거짓 고소이기 때문이다. 공회원들은 재판을 시작함에 있어 스데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기 때문이다.
(행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때나 지금이나 천사의 얼굴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그들은 스데반의 얼굴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천사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스데반의 고소건은 정치적인 문제였다. 아무리 천사의 얼굴이라 할지라도 죽이기로 이미 합의된 사안이었다. 그들은 유대교를 지키기 위해 기독교 신자인 스데반을 죽여야 한다고 믿었다.
스데반은 자신의 순교를 직감하고 공회에 모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설교를 한다. 스데반은 제법 긴 설교를 하는데 요점은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계시하시고, 그 후에는 그의 가족을 통해서, 그 후에는 선민 이스라엘 국가를 통하여, 그 후에는 율법 의식을 통하여 계시하였다가 마침내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셨다' 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어디서나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임에도 구약의 모든 역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아마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학습한 노력이 아닌가 싶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행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유대인들은 죄인을 사형시킬 때 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성 밖으로 끌고 나갔다. 돌로 치는 것은 신성모독에 대해 율법이 규정한 처벌이다(레 24:16). 처벌 방법은 돌이 많은 낭떠러지에 죄수를 세우고 증인이 먼저 그의 심장을 향해 돌을 던지고 다음에 둘째 증인, 그 다음에는 군중들이 돌을 던져 돌무더기를 만드는 것이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은 순교의 순간 하나님의 영광과 주 예수께서 서신 것을 환상으로 보게 된다. 학자들은 주님께서 스데반의 영혼을 받으시기 위해 일어섰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는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을 하늘로 받아들이는 대신 스데반보다 더 강력한 복음전도자를 세우셨다는 것이다. 그는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청년 사울인데 그는 훗날 가장 위대한 사역자가 되는 사도바울이었다.
스데반의 마지막 모습은 경이로울 뿐이다. 살기 위한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숨을 거둔다.
(행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교회에 큰 핍박이 임한다. 사도외엔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예루살렘을 벗어나 이방 땅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의 끝자락에서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은 이와같은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