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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

문학n천국 2023. 1. 30. 09:26

신앙에세이 -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골리앗, 노 프라블럼(Goliath, no problem)}
(부제: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

[2]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다. 구약시대 바벨론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갈대아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이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아버지 데라의 뜻에 따라 서쪽으로 직선 거리 약 1,000km에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려다가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약 1,040km 거리에 있는 하란에 정착했다. 하란은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 국경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하란에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이 나타났다. 아브라함의 나이 칠십 오세였다. 무언가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기에는 늦은 나이다. 다행히 아브라함의 사명은 토목공사 같은 건축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민족을 세우는 일이었다. 자녀를 생산하여 믿음으로 양육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소명을 받은 이후 25년 동안 아들을 낳지 못해 큰 민족은 커녕 집안의 대(代) 마저 끊어질 상황이었다.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란에서 가나안 땅 세겜까지는 630km 거리이다. 요즘처럼 포장이사를 전문으로 하는 익스프레스(express)가 있던 시절이 아니다. 사람이 작은 짐들을 포장해서 짐승을 통해 실어나르던 때이다. 단순히 이사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나서는 운명을 건 모험이다. 당연히 치안(public peace)이 불안한 여정(旅程,journey)이다. 경찰이나 군대가 호위하는 것도 아니고 자체적으로 외부의 위협을 극복해야 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세겜(shechem) 땅에 처음으로 장막을 쳤다. 아마도 세겜이 가축을 사육하는데 수월하고 또 다른 지역에 비해 가나안 원주민들의 텃세(territorial)가 좀 덜 했을거라 생각한다.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그곳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언약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Altar)을 쌓는다. 그리고 점점 남방으로 장막을 옮겨 간다.

(창12:7-9)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 정착을 못한 상태에서 그 땅에 큰 기근(famine)이 찾아온다. 생존을 위협하는 기근이었다.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는데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린(encounter) 것이다. 당시만 해도 냉장시설이 없었고 요즘처럼 가공식품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한 해 농사지어서 한 해 먹던 시절이었다.

아브라함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애굽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한다. 애굽은 기름진 땅이었다. 아브라함 가정은 고향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온 지 꽤 많은 시일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그네 삶이었다.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애굽 땅에는 시험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적인 혼란과 마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상하지 못했다. 애굽 땅에 들어가면서 아브라함은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된다. 아내 사라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급기야 애굽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하기를 자기를 남편이 아닌 오빠로 호칭하라고 한다.

(창12:11-13)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남편을 공경하는 사라는 남편의 말대로 아브라함을 오빠로 호칭한다. 그러자 애굽 남자들이 사라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결국 사라는 애굽 바로왕 앞으로 불려간다. 사라를 후궁이나 첩을 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눈 뜨고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왕이 내리는 예물은 왜 순순히 받았는지 의문이다.

(창12:14-16)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아내 사라를 빼앗긴 사건은 아브라함이 자초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누구의 아이디어도 아니고 아브라함 스스로 상황을 어렵게 한 면이 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르지(呼父呼兄) 못했듯이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아내라 부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믿음의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는 용기는 꼭 필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되찾아 올 수 없었다. 힘없는 이방인이 왕에게 빼앗긴 자기 사람을 찾아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브라함이 먼저 왕과 백성을 속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 사라가 재앙의 원인임을 깨닫기까지 바로왕과 그 집을 흔들어 놓으셨다. 그러나 엄밀히 바로왕에게는 허물이 없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왕은 배려를 한 것이다.

(창12:17-18)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바로왕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자신이 알게 된 진실에 대해 추궁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진실을 고백했고 아내를 데리고 떠나도록 명령받았다. 바로왕은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떤 처벌도 없이 아브라함이 평안한 가운데 아내와 떠나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창12: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를 읽다 보면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했던 실수를 한번 더 반복한다. 창20장에 그랄왕 아비멜렉에게도 아내 사라를 여동생으로 소개함으로 또 빼앗긴다. 자기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역시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아내가 신속하게 돌아왔다.

(창20:2-3)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이 사건들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아브라함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된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명예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두 번이나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빼앗기고 아내에게 거짓을 말하게 강요한 것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물론 혹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호적상 오누이 관계이니 거짓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부부가 된 이상 지켜야 할 부부간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애굽의 바로왕에게 아내를 빼앗겼다가 곧 돌려 받았고, 그랄 땅 아비멜렉왕에게 두 번째 빼앗겼다가 곧 돌려 받았다. 사실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이 바로왕과 아비멜렉왕을 극복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편이 되시니 두 왕들이 회개하며 신속하게 아내 사라를 돌려 보내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세상의 권세있는 자들을 상대할 수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면 그들이 우리의 돕는 자가 된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분이시다.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