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금송아지를 예배한 백성들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골리앗, 노 프라블럼(Goliath, no problem)}
(부제 :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
[4] 금송아지를 예배한 백성들
바로왕으로부터 출애굽을 승인받은 이스라엘은 애굽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2개월 동안 행군했다. 라암셋에서 시내광야까지는 직선 거리로 320km이다. 일반적으로 성인이 하루에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약 80리, 곧 약 32km이다. 그래서 건강한 남성은 열흘이면 라암셋에서 시내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노인들의 보폭(stride)을 고려해 속도를 조절한 결과 60일, 곧 두 달이 소요되었다.
(출12: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출19:1-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시내광야에 도착하자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Mt. Sinai) 정상으로 부르셨다.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수여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지 40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모세에게 무슨 변고(變故)가 생겨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출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모세의 죽음을 가정하고(assume) 대책을 세우게 된다. 그 대책이란 것은 모세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존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기로 한다.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가 위협한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서 실질적인 2인자였다. 아론은 백성들의 잘못된 요구에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지 않고 그들의 모의에 적극 동조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자기들의 신으로 만들게 된 것은 애굽의 영향 때문이다. 애굽에는 아피스라는 송아지 신이 있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성과 강력한 힘과 생산 능력을 가진 것이 아피스이다. 또한 아피스는 죽음과 부활과 생명이라는 의미를 가진 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많은 신들 가운데 아피스를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신(神)으로 위촉(appointment)한 것이다.
(출32:2-4)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은 직접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조각한다. 출애굽 지도자가 애굽의 우상을 직접 조각한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아마도 아론은 백성들에 의해 죽임 당할 것을 두려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백성들을 책망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 아론을 죽이고자 하셨다.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여호와 신앙에서 급속히 떠나가는데 지도자로서 수수방관하고(look on)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론은 직접 제작한 우상을 가리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선포한다. 정말 눈 씻고 봐도 아론에게서 믿음은 발견할 수 없다. 정말 죽어 마땅한 배교(apostasy) 행위이다. 그러나 모세의 중보기도로 아론은 목숨을 건졌다. 훗날 아론은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이 되었는데 그저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신9:19-20)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백성들의 판단과 다르게 모세는 40일이 지나서 시내산에서 내려왔다. 모세는 40일 동안 하나님의 임재 안에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산 위에 있는 동안 산 아래 백성들은 축제를 베풀고 있었다.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자기들을 구원한 신으로 인정하고 그 신상 앞에서 먹고 마시며 즐거이 춤을 추고 있었다. 만약 모세가 살아있음을 알았다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출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던 중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세상 말로 뚜껑이 열리고(hit the roof) 말았다. 자기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이스라엘 안에서 영적인 반역, 영적인 쿠데타(coup d'état)가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거룩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시고 홍해를 기적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에게서 백성들이 신속히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애굽의 하챦은 신을 여호와로 둔갑시키고 말았다. 모세는 하나님이 친히 새겨 주신 십계명 두 돌판을 백성들 앞에 던져서 깨뜨리고 만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출32:17-19)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백성에게 돌아온 모세는 아론에게 분노를 터트린다. 백성들의 배신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론은 자신의 죄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한다. 심지어 우상을 만든 것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도록 했고, 백성들을 방자하게(impudent) 한 아론의 죄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출32:24-25)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모세의 복귀는 백성들에게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곧 현실이 되었다. 모세는 여호와의 편에 서겠다는 사람들을 불러냈고 레위 자손이 자원했다. 그리고 칼을 찬 레위 자손들에 의해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에 대해 피의 징계가 있었다. 무려 삼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출32:26-28)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사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아론이 부재중인 모세를 대신해 백성들의 대표로 있었을 때는 금송아지 우상이 만들어지고 그 우상에게 예배하는 악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죄를 범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백성들이 방자해졌다.
그러나 모세가 복귀하자 상황은 뒤바뀐다. 아무도 우상숭배를 강요하지 않고, 슬금슬금 죄의 현장에서 벗어났다. 삼천 명이 죄의 댓가로 죽어 나갈 때 어느 한 사람도 모세에게 따져 묻지 못했다.
무슨 의미일까? 죄라는 것은 연약한 자를 통해 틈을 타서 역사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약하고 의지가 약한 사람들을 통로로 죄는 번져 나가는 것이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통해서는 죄가 역사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그런고로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도 사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도해서 혹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 나라에서는 군인들의 숫자가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믿음있는 한 사람이 더 소중한 것이다. 소년 다윗 혼자서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가 감당 못하는 골리앗과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사건은 우리에게 좋은 모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