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선지자 한 사람이 군대보다 낫다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골리앗, 노 프라블럼(Goliath, no problem)}
(부제 :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
[7] 선지자 한 사람이 군대보다 낫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여호람 왕 때 사역을 시작한다. 여호람 왕은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이다. 여호람 또한 그의 부모들처럼 여호와를 섬기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왕이다.
그리고 당시 남유다 왕은 아하시야이며 그는 아달랴의 아들이다.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로서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의 정략결혼으로 남유다 왕국의 왕비가 되었고 아하시야를 낳았다( 당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은 여호람으로 동명이인이다). 한마디로 당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모두 악녀(惡女) 이세벨의 아들과 딸(아달랴)의 권력 아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아람은 이스라엘과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어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약탈해 갔다. 특히 아람은 벤하닷 2세 때에 더욱 강성해져서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북이스라엘 아합 왕을 죽였고, 그의 아들 여호람 왕 때에 본격적으로 북이스라엘 땅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람 군대의 도발(provoke)은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go up in smoke). 아람 군대가 공격해 오는 길목마다 이스라엘 군대가 매복(ambush)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람왕은 계속된 공격 실패에 기밀(top secret)이 새어 나갔다고 판단한다. 자기 신하들 가운데 이스라엘 고정간첩(resident spy)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왕하6:9-10)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때 신하들이 엘리사 선지자에 대해 보고를 한다. 엘리사 선지자가 왕의 일거수 일투족(every move)을 이스라엘 왕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왕의 생각까지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한다. 아람의 신하들은 이스라엘을 도발하면 할수록 아람의 손실만 커진다고 믿고 있었다.
(왕하6:11-12)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그러나 아람왕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도발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강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북이스라엘 왕을 잡기 전에 엘리사를 먼저 잡기로 마음을 정한다. 엘리사만 잡을 수 있다면 북이스라엘을 충분히 도모할(aim to do)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람왕은 분을 삭이며(blow off steam) 엘리사의 소재를 파악한다. 그리고 엘리사가 도단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 특수 임무 부대, 곧 암살 부대를 엘리사가 있는 도단에 보내 포위한다.
(왕하6:13-14)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은 한 밤 중에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엘리사의 성읍이 온전히 포위되기까지 이스라엘 군대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아람의 작전이 성공하는 듯 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밖에 나와 보니 온 성읍이 적군에 의해 포위 되었음을 보게 된다. 게하시는 깜짝 놀라 엘리사에게 보고한다.
(왕하6: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엘리사는 하나님의 군대가 자기들을 호위하고 있다며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게하시에게도 영안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엘리사의 기도에 게하시는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을 둘러 진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왕하6:16-17)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게하시가 본 것은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였다. 이것은 지상의 인간 군대가 아니다. 하나님의 천사들로 조직된 최강의 하늘 군대이다. 이 군대는 히스기야 왕 때 남유다를 침략한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군대 185,000 명을 하룻밤 사이에 호흡을 다 끊어 놓은 무적의 군대이다. 피 한방울 보지 않고 깔끔하게 전쟁을 끝내는 군대이다.
(왕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엘리사는 이제 하나님께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길 기도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곧 눈 뜬 장님이 되어 버린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에 나아가 그들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성으로 인도한다. 아람 군대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적국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자기들이 북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포위되고 말았다.
(왕하6:18-19)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읍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출정한 아람 군대는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단체로 장님이 되어 이끄는대로 끌려 가는 무기력한 군인들, 곧 무늬만 군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은 시력이 회복되었을 때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엘리사의 성읍이 아닌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한복판에 자기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한복판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눈을 뜬 것과 같다.
그들은 뭔가에 홀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이 꼼짝없이 죽게 된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모두가 다 엘리사 때문이었다. 북이스라엘 왕도 아람 군대의 이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이들을 어찌 처리하면 좋을지 묻는다.
(왕하6:21-22)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아람 군대는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다. 그러나 엘리사는 왕에게 그들을 살리라고 간청한다. 아람 군대가 만약 전쟁포로가 되었더라면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람 군대는 엘리사를 죽이러 왔었지만 지금은 엘리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엘리사 때문에 살아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 뿐만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대접받고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들은 엘리사의 이름으로 만세 삼창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왕하6:23)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만약 아람 군인들을 모두 살륙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두 나라의 전면전이 되지 않았을까? 아람이 게릴라 작전을 중단하고 국경 모든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전쟁을 일으키면 이스라엘의 전력으로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람 군인들이 살아서 돌아감으로써 하나님과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간증이 그 땅에 넘쳐나게 되고 전쟁에 대한 그들의 의지가 온전히 꺾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엘리사가 그들을 살려 보낸 것은 긍휼이다. 긍휼은 본래 큰 자가 작은 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후로 아람 군대는 다시는 이스라엘을 도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땅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는 한 무모한 도발은 쓸모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이 하루는 아버지 사울왕의 허락없이 블레셋 진영을 혼자 공격해서 이십 명을 쳐죽인 적이 있었다. 요나단은 블레셋 진영을 공격하면서 하나님 앞에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고백했었다.
(삼상14: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14: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와 세상과의 관계도 같은 이치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시면 승리는 늘 우리의 것이다. 숫자는 다만 필요한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람왕은 허약한 이스라엘 군대만 생각했을 뿐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생각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패인(敗因), 곧 실패의 원인이다. 엘리사 선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세상 군대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이 시대에 그 한 사람이 되길 기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