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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24.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9:9-13)

문학n천국 2021. 11. 19. 16:57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24]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9:9-13)

어느날 예수님께서 세관, 곧 세무서 앞을 지나가시다가 마태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 근무 중에 제자로 부름받은 마태는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막2:13-17, 눅5:27-32절에는 그 이름이 레위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이다. 시민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당국에 바쳤기에 시민들에게서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다. 거의 죄인과 동일하게 여김받았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그 사회에서 세리와 죄인은 하면 인간관계를 멀리해야 할 기피대상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기피대상이었던 마태를 최측근으로 세우신 것이다. 이왕 제자를 세우실거면 명성있고 학식있고 두루 사랑받는 사람을 세우시면 좋을텐데 이건 너무 파격적인 인사였다. 복음사역에 마이너스가 될 것 같은 우려를 갖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대로 마태는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저자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잘 서술한 사람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판단은 옳았다.

마태는 제자로 부름 받은 날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그리고 자기보다 먼저 제자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자신의 세관 동료들도 불러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었다. 아마도 마태는 부자였을 것이다. 당시 세리들의 부정축재는 일반적이었다. 로마당국에 바치는 세금을 부풀려서 자기들의 주머니에 착복했었다. 아무튼 꽤 많은 사람들이 식탁에 초대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바리새인 몇 사람도 동석하고 있었다.

식사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는 의문 섞인 질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대답하신다. (9:12-13)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고, 그들의 치료자로 오셨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리는 너무 큰 죄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무거운 세금을 착취해 로마에 바칠 뿐만아니라 율법의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사람들과 어깨동무하고 식사하고 이들을 만져 치료하셨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신다. 믿음생활에서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대제사장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훌륭하고 모범적인 신자들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적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만족에 빠져있는 이 사람들이 아닌 죄 많고 허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제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담보하는 것이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제사에 대해 주님께서는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긍휼이다. 제단에 제물을 많이 가져오는 것보다 긍휼을 실천하는 삶이 하나님 앞에 값지다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천대받고 저주받던 세리나 죄인들을 가까이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 주님의 긍휼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