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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26. 열두 해 혈루증 여인과 죽은 소녀 (마9:18-26)

문학n천국 2021. 11. 19. 17:00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26] 열두해 혈루증 여인과 죽은 소녀 (9:18-26)

예수님께서 위급한 상황을 만난 한 관리의 집에 심방을 가시는 길이었다. 자기 딸이 방금 전에 죽었다며 헐레벌떡 달려온 관리의 요청을 받은 까닭이다.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막5:21-43절, 눅8:40-56절에 의하면 이 관리는 회당장 야이로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현재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시는 게 아니다. 이미 숨을 거둔 사람에게 가시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인지라 잰 걸음으로 가고 계셨는데 한 여인이 나아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 이 여인은 혈루증으로 12년째 고통당하고 있었다. 혈루증은 여성의 하혈이 멈추지 않는 질병이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많은 돈을 허비했으나 병세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아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가까운 길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달려나와 군중을 헤집고 들어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 이 여인에게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군중들이 밀치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인지하셨다. 주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돌아보셨다. 그리고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22). 예수님은 여인을 책망하지 않으셨다. 예의가 없다느니, 순서를 지키라느니 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믿음으로 행한 일을 칭찬하셨다. 여인은 예수님의 칭찬과 함께 고통과 슬픔의 시간들과 작별했다. 그녀의 삶은 새로워졌다.

예수님께서 바삐 걸어 도착하신 곳은 관리의 집이었다. 장례절차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피리 부는 자들과 곡하는 사람들이 이미 그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하신 첫 마디는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는 말씀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장례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보고도 관리의 딸을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 취급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모두 집 밖으로 내보신 후 죽은 소녀에게 '달리다굼,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고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죽었던 소녀는 살아났고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죽은 사람에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져? 했던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에 놀랄 뿐이었다.

혈루증 여인의 치유사건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 회생사건은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한다. 한 사람은 12년의 시간을 허비했고, 한 사람은 두 세 시간도 되지 않아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 사람은 빙 돌아서 예수님께 왔고, 한 사람은 최단거리로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이다. 기적의 비결은, 성공의 비결은 곧 거리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마지막 방법이 되어선 안되며, 예수님을 모든 문제의 첫번째 접촉자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는 영적으로 매우 지혜로웠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가장 심각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첫 접촉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혈루증 여인은 결국 예수님께 치유 받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2년간 수많은 의사를 만나 갖가지 치료요법을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녀의 재산 대부분이 증발하고 말았다.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수많은 멸시도 받아야 했고,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자존감을 상실하고 말았다.

우리를 살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뿐이시다. 오직 예수님만이 절망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소망을 갖게 해 주신다. 먼 길 돌아가지 말고 지금 곧 예수님께로 전력을 다해 달려가 그 품에 안겨야 한다. 이것만이 살 길이다. 이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