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 대화 탐구 시리즈 1 >
《 하늘과 땅의 대화 》
[4] 내려놓음 × 내어드림 × 내어맡김
독수리 한 마리가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 위에 있는 호수를 비행하면서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마침 독수리의 눈에 죽은 양(Sheep) 한 마리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독수리는 쏜살같이 하강하여 양의 사체(Carcass)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꽉 움켜쥐고 그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죽은 양은 계속 물살을 따라 폭포 쪽으로 떠내려 가고 있었다. 그러나 독수리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고기를 뜯어먹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으니 폭포에서 떨어지더라도 아무 상관없어!’
그러는 사이에 죽은 양은 점점 떠내려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르러서는 물줄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제서야 독수리는 먹는 일을 중단하고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위하여 날개짓을 했다. 그러나 이미 독수리의 발톱이 죽은 양의 몸 속에 깊이 박혀서 빠지지 않았다. 결국 이 독수리는 양의 사체와 함께 폭포수에 휩쓸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 과욕이 부른 결말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높이는 99m나 된다.
언젠가 강준민목사님(LA새생명비전교회)의 글에 '우리의 신앙의 여정은 내려놓음에서 내어드림으로 그리고 내어맡김으로 나아가야 한다' 라는 한 문장에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이 방향으로 성장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현실은 내려놓음에서 막혀서 진전이 없다고 본다. '내어맡김'은 커녕 '내려놓음'도 안되는 것이다.
8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내려놓음>(2006)의 저자인 몽골/인도네시아 이용규선교사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수한 인재였다. 그는 코스타(KOSTA: Korean Students In America) 집회에서 은혜받고 세상적인 출세길을 마다하고 평신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헌신했다.
이용규선교사는 책에서 재밌는 일화를 소개한다. 자신의 두 살짜리 아들을 장난감 가게에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두 팔로 꼭 감싸 쥔 채 가게를 나오려고 했다. 장난감을 갖기 위해서는 점원이 바코드(barcode) 판독기로 체크(check)를 해야 하지만, 선교사의 아들은 울면서 장난감을 내려놓지 않으려 했다. 어떻게 됐을까? 결국 아들은 장난감을 쥔 채로 계산대 위에 올라가야 했다. 아마도 어린 아들은 '내려놓음'을 '빼앗김'으로 인식한 듯하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사고에 붙잡혀 있다고 본다.
성경에 '내려놓음'과 '내어드림'과 '내어맡김'을 모두 해 낸 인물이 있는데 아브라함(Abraham)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겨우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칠 무시무시한 명령 앞에 아브라함은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외아들을 동물제사처럼 제물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태연하게 명령을 수행한다. 모리아산(Moria Mountain)까지 사흘 길을 걸어가서 말씀에 순종한다. '내려놓음'과 '내어드림'과 '내어맡김'을 이렇게 한 번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단번에 성공했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게 쉽게 될 일인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일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다행히 내 부족한 믿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 일로 나를 시험하실 것 같지는 않다. 하기야(indeed) 쉬운 일을 명령하실까? 사람 그릇(steeper), 신앙 그릇(steeper)을 봐가며 요구하실 것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Lot)이 있다. 롯은 아버지 하란(Haran)이 일찍 죽자 작은 아버지(?)인 아브라함 슬하(膝下)에 들어와 살게 된다. 그리고 복을 받아 부유하게 되어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동거하기가 어려워지자 요단강 근처 소돔 땅으로 이동해 정착하게 된다. 아브라함에게서 독립해 나간 곳이 소돔 땅이었다. 소돔성은 죄악의 도시였다.
(창세기 13:11-13)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나님께서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고자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을 알리셨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원해 주시길 간청한다. 결국 소돔성이 멸망할 때 조카 롯의 가정만 구원받았다.
(창세기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의 가정이 구원받는 과정은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밤중에 롯의 가정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셨다. 롯의 가정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새벽이 되었고 동 트기 전 겨우 성(城)을 벗어났다. 그리고 새벽녘에 유황불이 비같이 하늘에서 내려 소돔성을 불태웠다.
(창세기 19:23-25)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롯의 네 명의 가족 중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롯과 그의 두 딸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뒤를 돌아 보았다가 소금기둥(a pillar of salt)이 되고 말았다.
(창세기 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창세기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왜 뒤를 돌아 보았을까?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란한 소리와 번쩍거리는 불빛과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쯤이야 괜챦겠지?' 하는 태도에 하나님께서 소금기둥을 만들어 버리셨다. 소금기둥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왜 하필 소금기둥일까? 내 추측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그 상태로 몸이 굳었고, 그와 동시에 소금으로 롯의 아내의 몸을 덮어 동상처럼 굳게 하신게 아닐까 생각한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것에 대해 성서학자 카일(Keil)과 델리취(Delitzsch)가 공저(共著)한 <창세기 주석>에서 "우리는 그녀가 실제적으로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고 상상하지 말고 처음에는 맹렬한 불과 유황 증기에 의해 죽었고 그 후에 소금으로 덮여져서 소금 동상과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상상해야만 한다"고 했다. 물론 진실은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은 '내려놓지 못함'이 원인이라고 본다. 그들의 부유함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선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롯의 아내는 잿더미가 되어가는 자신들의 소유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지 않았다면 반드시 회복될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정면으로 대항함으로써(antagonize) 하나님을 잃고 말았다. 가장 큰 것을 잃고 말았다.
아브라함처럼 '내려놓음'과 '내어드림'과 '내어맡김'이 쉽진 않지만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고 본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자. 그리하면 형통하게 된다.
(역대하20:20)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누가복음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