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31] 세상에 검을 주러 왔노라 (10:34-39)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시면서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평화가 아닌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미지를 위해서는 오히려 평화를 주기 위해 오셨다고 선포하시는게 좋을텐데 말이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눅12:51-53절에는 특별히 가족간의 분쟁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마치 가족의 해체를 위해 오신 것처럼 말씀하신다.
(눅12:51-53)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인생의 일반적인 문제로 가족 간에 갈등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신앙으로 인한 영적인 갈등을 각 가정에서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과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한 공간 안에 살면서 마찰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갈등을 통해서 신앙의 옥석이 가려지는 것이다. 사탄에게 붙들린 사람은 예수 신앙의 무용론을 말할 것이고,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은 '오직 예수'만 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함께 있으면 믿지 않는 자 편에서 먼저 공격해오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탄이 성도를 미워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를 배척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서로 물고 뜯는 관계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가족 관계에서 원수의 관계로까지 이들의 관계는 악화될 수도 있다고 말씀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엄마와 딸의 분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분열은 누가봐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럼에도 가족 간에 분열과 갈등을 경험하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사탄의 작은 도전에도 쉽게 무너져 신앙을 포기하면 하나님의 책망이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보다 부모 자식을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을 미워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하나님 보다 그 어떤 것도 앞세우지 않는 것이 신앙의 경주를 시작한 사람의 마땅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10:37-38)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가족을 포기할 수 없어서, 가족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주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신앙은 우리의 목숨과도 바꿀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이 믿음의 길에 장애가 된다면 그에게는 그 가족이 십자가이다. 돈이나 건강이 믿음의 길에 장애가 된다면 이것이 또한 그에게는 십자가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의 십자가에 깔려 질식해서는 안된다. 어찌하든 그 십자가를 지고 가서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어깨의 모든 짐을 풀어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신앙적인 모든 도전은 나를 보석되게 하고, 내 가정을 신앙의 옥석되게 하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혹 갈등을 겪고 있다면 그 갈등 너머의 신앙의 승리를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갈등과 분열은 우리를 영적으로 깨끗이 씻기시는, 그래서 십자가 하나만 붙들게 하시는 참 은혜이자 배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