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35]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12:1-8)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고 있었다. 구약 율법의 해설서인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2,000규빗 이상 움직일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지금으로 계산하면 1km이다. 이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동한 거리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또 손이나 어깨에 짐을 옮기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었다. 본문에 나오는 이삭을 비벼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외경인 마카비1서에 보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소중히 여긴 나머지 헬라인들과의 전쟁 때에 안식일이 되자 싸우지 않고 차라리 칼에 맞아 죽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지켜야 할 규범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안식일을 중요시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은 번번이 율법을 어기셨다. 물론 의도하신 바가 있어서이다.
본문에 보면 이동 중에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면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다. 이것은 금지조항이었다. 동행하던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보고 지적했다. 아마 바리새인들의 눈에는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지적에 예수님은 구약시대 다윗왕의 일화를 말씀하신다.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기던 시절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다. 다윗은 음식을 구했고, 아히멜렉 제사장은 자기들이 먹는 평상시 떡은 없고 성전 제단에서 나온 떡은 있다며 다윗 일행에게 내주었다. 이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윗과 일행은 그 떡을 먹고 힘을 내서 길을 떠났다(삼상21장).
예수님은 다윗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성전 진설병을 먹었는데 그럼 다윗도 율법으로 정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다윗왕은 부정할 수 없는 민족의 영웅이자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결코 다윗을 부정하지 못한다. 결국 다윗 얘기에 바리새인들은 공격을 중단했다.
막2:26-28, 눅6:1-5절에 보면 본문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 의미를 이렇게 정의해 주신다.
(막2: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의미가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말씀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해석은 예수님이 최초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그 집단최면에서 깨어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유대인들처럼 잘못된 최면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모든 규범의 원본으로 삼아 해석해야 한다. 율법이나 기타 율법 해설서에 기초해 판단하게 되면 누구나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한 치의 오류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유대인들이 자기가 섬기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면서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기고 있다고 자부한 것이다. 인류 최고의 실수는 하나님의 박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인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한다. 어디 안식일 뿐이겠는가? 우리 생명의 주인도 예수님이시다. 그런고로 우리의 모든 활동, 모든 기도, 섬김, 선교 등등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이 인생이 누릴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 사도바울도 같은 고백을 드리고 있다.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