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50]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15:21-28)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을 지나가실 때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왔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병행 본문인 막7:24-30절에 보면 이 여인은 헬라인이고 수로보니게 족속이며 어린 딸이 흉악한 귀신 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여인의 바램은 딸이 귀신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어린 딸이 귀신에게 사로잡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소리 지르며 괴로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귀신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들어간 사람의 몸을 자기 집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아주 강한 영적인 파워가 작용하지 않는 한 떠나려 하지 않는다. 이 여인은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여인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에만 보냄 받았다'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믿음 없이 들으면 시험에 들 수 있는 말씀을 하셨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방인이라 해도 차별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매몰차게 여인의 부탁을 거절하셨다.
이렇게 개 취급을 당한 여인은 자존심이 상할 법한대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며 오히려 예수님을 놀라게 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부스러기 은혜를 사모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가장 절실하게 하는 상황이 무엇일까? 자녀가 심히 아파할 때가 아닐까? 이 상황에서 부모는 논리적일 수 없다.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모욕도 마다 하지 않는다. 이 여인은 딸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어떤 취급을 받아도 괜챦다고 생각했다.
월드비젼의 공익광고 가운데 일곱 살 어린 딸이 암에 걸렸는데 다른 장기에 까지 전이 되어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소녀의 엄마는 절대로 딸을 포기할 수 없다고 눈물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본문의 여인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 왔던 것이다.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도 예상 못한 대답을 하신다. 이스라엘은 자녀이고 이방인은 개라고 표현하신다.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여인의 한마디는 바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는 고백이다.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아마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보고자 하셨던 것 같다. 온갖 멸시와 모욕에도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인정하는지 확인하고자 하심이었던 것 같다.
이제 예수님은 선언하신다.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네 딸이 고침받았다' 고 선언해 주셨을 때 여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얼마나 신이 났을까? 부스러기 같은 은혜를 구했을 뿐인데 감당할 수 없을 만한 큰 은혜를 받았다. 여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인의 삶에는 분명 큰 변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시돈과 두로는 아스다롯 여신을 섬기는 나라였기에 집에 돌아간 후 가장 먼저 우상과의 결별을 선언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신상들을 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딸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을 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우리의 상황을 바꾸는 것은 믿음이다. 주일이 되었으니 그냥 교회 나가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큰 믿음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개 취급 받을지라도 예수만 붙들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이다. 상황을 역전시키는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