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54]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17: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고 난 뒤 엿새 후에 세 명의 애제자인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병행 본문인 막9:2-13절, 눅9:28-36절에 보면 마태, 마가복음에서는 엿새 후에, 누가복음에서는 팔일 째에 변화산에 오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변화산은 해발 588m로 나사렛 남쪽 9km, 갈릴리 호수 서쪽 18km에 위치한 다볼산(Mount of Tabor)으로 알려져 있다.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몸이 변화되셨다.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몸이 변화된 원인은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다음 구절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천국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국사람인 모세와 엘리야를 접견하시기 위해 변화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중요한것은 모세와 엘리야의 방문 목적이다. 마태와 마가는 방문 목적을 기록해 놓지 않았지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눅9:30-31)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아마도 단순한 통보가 아닌 십자가 고난을 앞에 두고 계신 주님을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접견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그 광경에 흠뻑 취했다. 또 그곳을 보존하고 싶어졌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빛의 축제였다.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디 가서 이런 위대한 조합을 만날 수 있겠는가? 애굽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킨 모세, 하늘에서 불을 내려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죽인 엘리야,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주님, 베드로 눈에는 이보다 더 완벽한 하나님의 특공대는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 초막 셋을 짓도록 허락을 구했다. 변화산에 계속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인생 경력이 꽤 됐을 법한 베드로가 다짜고짜 앞뒤 재지 않고 머물기 원했던 변화산이 장차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모형이 아닐까? 너무나 황홀한 세상, 빛의 나라가 바로 천국일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피곤해도 고달파도 견디는 것은 바로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천막을 치자고 제안하고 있을 때 빛난 구름이 변화산을 온통 뒤덮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난생 처음으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예수님께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대로 따라가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서 변화산의 체험을 해야 한다. 교회를 떠나기 싫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 내 인생의 천막을 펼쳐야 한다. 오직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의 신앙을 위하여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