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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69.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마22:15-22)

문학n천국 2021. 12. 3. 15:55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69]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22:15-22)

예수님과의 계속된 논쟁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쑥대밭이 되어갔다. 무승전패의 기록을 갖게 되었다.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자기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을 보내 어찌하든 논쟁을 통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빠트리려 했다.

이들은 세금에 대한 의견을 예수님께 물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유대 사회에서 세금 문제는 매우 민감했다. 적극적으로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면 반민족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고 세금 납부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면 로마제국의 반체제인사로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계셨다.
(22:17-18)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당시에 세금으로 바치던 데나리온은 은화로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 데나리온에는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려 하는 자들의 악함을 아셨지만 논쟁의 핵심을 지적해 주고자 하셨다.
(22:19-21)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들이 세금으로 바칠 데나리온을 제시하자 데나리온의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반문하신다. 논란을 일으키기 위해 온 그들에게 결정적이고 묵직한 한 방을 날리시기 위함이다. 그들은 사실을 서술할 수 밖에 없었다.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라고 조심스레 대답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쐐기를 박는 답을 주신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것은 신앙생활의 대원칙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의 경계선만 분명히 알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침범하지 않고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왕이 된지 이년 만에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다. 전쟁의 단초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블레셋은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급함을 느끼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급히 통보하여 전쟁을 시작함에 앞서 제사를 드려줄 것을 요청했다. 사무엘은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통보했다. 당시 사무엘은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와 라마로 순회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사울이 왕이 된지 이 년이 되었지만 사무엘은 벧엘이나 미스바나 라마에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었을 것이다(삼상7:15-17). 그렇지 않으면 삼상13:15절의 기록처럼 기브아에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속한 일주일이 되어도 사무엘 선지자가 진영이 있는 길갈에 도착하지 않자 사울왕은 자기가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집례하고 말았다. 사울왕은 베냐민 지파로 제사장 가문과는 아무 연관이 없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의 역할은 대체불가의 신성한 영역이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은 어느 누구도 제사를 집례해선 안되었다. 하지만 사울왕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제사를 집례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사울왕이 폐위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왕의 바통을 다윗이 물려받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영역을 침범해선 안되는 것이다.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물론 사울왕에게도 나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백성들은 훝어지고 적군은 점점 압박해 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사무엘 선지자의 지적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려선 안되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Let God be God) 는 이 말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신학적 입장이다. 이 말에서 더 나아가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Let Chuch be Chuch) 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삶의 목적을 품고 나아가야 하겠다. 주님을 주님 되게 하는 목적을 품고 나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