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70] 계대 결혼 풍습과 부활 신앙 (22:23-33)
구약시대 근동지역에는 계대결혼 곧, 시형제 결혼법이 있었다. 남편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첫 아들로 하여금 죽은 형제의 기업을 잇게 하는 풍습이다. 이것은 가문의 번성과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창세기 38장에 보면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가 아들 셋을 낳았는데 엘과 오난과 셀라이다. 장남 엘을 혼인시켰는데 며느리 이름은 다말이었다. 그러나 엘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엘을 죽이셨다. 그래서 결국 둘째 오난이 형수와 결혼했는데 첫째 아들이 어차피 형의 아들이 되기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임신이 되지 않도록 땅에 정액을 설정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셨다. 그리고 막내인 셋째 아들 셀라에게로 형의 기업을 잇게 하는 책임이 전가되었다. 이런 풍습이 계대결혼이다.
오늘날의 윤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근동지역에서는 나름 구속력이 있는 풍습이었다. 본문에는 이 풍습을 도구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이었다. 사두개인은 다윗왕 시대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들이다. 이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다. 부활을 믿지 않으니 현세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만 살아가는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본문은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내용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결혼했다가 자식이 없이 죽었다. 풍습에 따라 둘째가 형수와 재혼했다. 하지만 둘째도 자식 없이 죽었고, 셋째로부터 일곱째까지 모두가 이 여자를 취했지만 자식은 없었다. 그렇다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이다.
(22:25-28)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부활이 없다고 가르치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궁지에 넣으려는 계책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우리는 부활 때에 장가를 가거나 시집가지 않는다. 천국은 이 세상의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땅은 번성과 번창이라는 가치 아래에 있지만(창1:28), 천국은 영생복락만이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천국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질문인 것이다.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국에서는 인간관계의 개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천국은 인간의 성공을 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영원토록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 방식은 천사와 같아진다고 말씀하신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의 고통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지옥에서 하는 회개나 후회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지옥의 고통을, 저주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땅에서의 시간에 한정되어 있다. 돌이킬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는 없다.
부활한 성도의 천국에서의 삶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계22: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영원토록 밤이 없고, 저주가 없으며,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영원토록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영원토록 즐거운 찬양만이 있는 천국은 지금 오늘 예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이 영원복락을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다. 부활과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