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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산책 74. 화 있을진저 3 (마23:23-28)

문학n천국 2021. 12. 10. 08:45

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74] 화 있을진저 3 (23:23-28)

경건한 유대인들은 금전적인 수입의 십일조 뿐만 아니라 텃밭에서 거둔 작은 식물까지도 십일조로 구분해서 드렸다. 본문에 나오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텃밭에서 소규모로 재배하는 작은 채소들이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철저하게 십일조를 구별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심을 드러내고자 했다.

십일조는 본래 목적이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섬기기 위함이었기에 주변의 어떤 재료도 다 십일조로 드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텃밭의 채소까지도 구별했던 그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율법에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즘 말로 헌금은 빠트리지 않고 하는데 삶이 복음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본문에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는 하루살이에 비유되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낙타에 비유되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채소들처럼 사소한 것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의와 긍휼과 믿음 같은 정작 중요한 것은 꿀꺽 삼켜버렸다고 설명한다. 하루살이는 잘 걸러내고 낙타는 통채로 삼켜버린 것이다. 이 말은 정말 중요한 영적인 가치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23:23-2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극히 일부 교인들 가운데 주일에 나와서 헌금만 하면 성도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헌금은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주중에는 예수 모르는 사람처럼 살다가 주일에 나와서는 거룩한 척하며 헌금만 하는 사람들은 낙타를 삼켜 버린 사람들인 것이다. 하루살이처럼 덜 중요한 것들은 열심을 내고, 낙타처럼 정작 크고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엿새 동안의 삶 가운데서 잊고 산 것이다.

또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했으나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했다고 말씀한다. 다시말해 이 사람들은 위선적이었다는 것이다.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외식은 위선(hypocrisy)으로도 번역되는데, 고대 희랍의 연극배우가 맡은 역할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따라서 어원으로 따지면 외식은 만나는 사람과 사건과 정황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말로 위선과 외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내면은 악하고 거짓인데도 겉으로만 선하고 진실한 척 하는 것은 위선이다. 그리고 외식은 경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갖는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위선을 설명하는 말씀이 있다.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예수님은 계속해서 위선을 설명하기 위해 무덤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마치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의 무덤의 형태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봉분형 무덤이고, 둘째는 동굴형 무덤이다. 특별히 봉분형 무덤의 경우 일 년에 한번씩 무덤에 회칠을 한다. 페인팅(painting)하는 것이다.

무덤을 페인팅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무덤의 위치를 알려주어서 은연중에 무의식 중에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시신이 묻혀있는 무덤에 접촉한 사람은 일주일 동안 부정하기 때문이다(민19:16). 그리고 그 기간에는 성전 출입이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23:27-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겉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속이 썩어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겉만 아름답게 하는 것은 위선이다. 속임수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은 이렇게 위선과 불법이 가득했던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