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84] 이것까지 참으라 (26:47-56)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가서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에 가룟유다가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군사들을 인솔하여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다. 그들의 손에는 칼과 몽치가 있었다. 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몽치를 몽둥이로 번역하고 있다. 예수님 말씀처럼 마치 강도를 잡는 것처럼 준비하고 온 것이다(26:55).
가룟유다는 군사들에게 자기가 입을 맞추는 자가 예수이니 체포하라고 이미 지시를 해놓았다. 그리고 가룟유다는 태연하게 예수님께 나아가 입을 맞추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이미 네가 계획한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덤덤하게 십자가로의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그러자 대제사장의 종들이 나와 예수님의 팔을 움켜 잡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제자가 가지고 있던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병행 본문인 요한복음 18:10절에는 칼을 휘두른 자는 베드로이고 귀가 떨어진 대제사장의 종의 이름은 말고라고 말씀한다.
(요18: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님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들과 예수님의 생명을 지키려는 자 사이의 그 긴장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찌하든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홀로 발버둥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수제자의 든든함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평온함을 유지하며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금언같은 말씀을 주셨다.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까지도 참아야 한다며 자기를 잡으러 온 군사 중 하나인 말고의 귀를 만져 본래대로 낫게 해주셨다.
(눅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이것까지 참으라! 예수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기 목숨을 해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그 울분을 어떻게 참아 내셨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님 당시 로마 군대의 한 군단은 6,000명 규모의 병력이었다. 열두 군단이면 72,000명 쯤 되는 병력이다. 예수님께서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한마디만 하시면 72,000명의 천사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대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26:53-5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예수님이 지금의 이 상황을 견디고자 하시는 이유는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 첫째이다. 두번 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때문이다.
(요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온 몸으로 죄에 대한 저주를 짊어지고 가시겠다는 것이다. 주님의 이 사랑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의 결말은 무엇인가? 예수님 혼자 숲 속에 버려지고 말았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된 일이었다.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슥13: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제자 중 어느 누구도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 심지어 칼을 휘두르며 주님을 지키겠다던 베드로도 도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예수님은 고독한 중에 체포되어 대제사장에게 끌려 가셨다.
마침내 유대인의 법정에 서신 예수님은 불공평한 재판을 받으셨고, 총독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로마 빌라도총독의 재가를 받아 십자가 처형이 집행되었다. 믿는 우리에게는 매우 뼈아픈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