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마태복음} 산책하기
[9] 간음과 이혼 (5:27-32)
예수님은 마음에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일반적으로 간음은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육체적 관계를 갖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 까지는 막을 길이 없다. 확인할 방법도 없고, 처벌할 근거도 없다. 상상은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의 은밀한 상상을 어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신다. 범죄한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남자들 입장에선 다소 억울할 수도 있다. 요즘 말로 남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여자가 없는 세상에 가서 살라는 말씀인가? 외출할 때마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하는가? 등등 볼멘소리를 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성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을 쾌락의 도구가 아닌 고단한 한 영혼의 모습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내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시는 것이 아닐까?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 일곱 귀신 들렸었고 창녀였다고 인정되고 있다. 성경은 정확하게 창녀였다는 표현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복음서를 종합해 볼 때 창녀였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많은 남자들은 이 막달라 마리아를 보면서 비슷한 상상을 하지 않았을까? 창녀 출신이라면 얼마나 외설적인 자태를 뽐냈겠는가? 요즘 말로 섹시함을 뚝뚝 흘리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을 보셨다. 그녀의 지치고 상한 영혼을 보셨다.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고 일곱 귀신를 내쫓으심으로 영육간에 새롭게 하셨다. 우리의 시각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여자를 볼 때, 혹 여자가 남자를 볼 때도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체 가운데 범죄에 사용된 부분이 있다면 찍어 내거나 빼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조금 무서운 말씀이다. 오른눈 때문에 범죄하게 되었다면 오른눈을 빼어 버리고, 오른손 때문에 범죄하게 되었다면 오른손을 찍어 내버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 세상은 장애자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한쪽 눈이 없는 사람은 물론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과연 원하시는 모습일까? 분명 주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찍어낸다고 과연 죄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매섭게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죄를 미워하라는 것이다. 팔과 다리를 찍어낼 만한 결단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죄는 덮어 두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도려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혼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이혼은 음행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버리기 위해 거짓 증거를 제시해선 안된다. 그리고 설령 확실한 증거가 있다 해도 이혼증서를 써 주도록 명령하신다. 이혼증서를 받지 못한 여자가 재혼하게 되면 간음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혼증서는 이혼녀라는 낙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보장해 주는 배려인 것이다.
세상은 이혼녀에 대해 온갖 억측을 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해 주시려는 것이다. 이혼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모습으로든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롭게 자기 인생을 조각해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