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기적을 말하다} 시리즈 25
[25]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다 (요11:1-44)
예수님이 수전절 절기에 예루살렘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며 '당신이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시오' 라며 물었다. 이때의 분위기는 다분히 강압적이었다고 보여진다(요10:22-24).
예수님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씀하셨다.
(요10:29-30)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라고 선언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체포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유대 땅을 벗어나 요단강 건너편 세례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에 가서 거하셨다.
(요10: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그런데 이즈음 유대 땅 베다니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보낸 전갈이었다. 이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리 쯤 떨어진 마을이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 계신 요단강에서 베다니 까지는 25km 쯤 되는 거리였다. 도보로 하루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km쯤 떨어진 감람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베다니 나병(문둥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율법에 의해 문둥병자들은 격리된 마을에서 집단생활을 해야 했다.
그럼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도 문둥병자였는가?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웠는가? 등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는 신약성경을 기록할 때 아람어를 헬라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병(gar'ba) 과 비슷한 글자인 항아리(garaba)에 주목한다. 다시말해 항아리를 만드는 마을이었다는 것이다. 마리아의 값비싼 옥합 그릇도 이곳에서 생산되었을거라 추측한다.
아무튼 마르다와 마리아가 보낸 전갈의 내용은 오라버니 나사로가 매우 위중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나사로는 병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나사로의 상태가 갑자기 위중해지면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것이다. 아마 예수님께서 급히 오셔서 치유해 주실 줄로 확신했던 것 같다.
(요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하지만 예수님은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그곳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셨다.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주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이 지체하시는 동안 나사로는 죽어서 장례가 치러졌다. 유대 땅은 당일에 장례를 치르는 문화이다. 사도행전 5장에도 아나니아가 죽자 바로 시신을 메고 나가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그의 아내 삽비라가 죽자 또 시신을 메고 나가 장례를 치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의 장례가 치러지고 난 후 나흘 째 되는 날 예수님은 마침내 베다니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베다니로 올라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사로가 죽었다고 밝히 말씀하셨다.
(요11:14-15)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니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었다. 마르다의 말처럼 시신에서 부패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11:39). 예수님은 마중 나온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마르다는 나사로가 지금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서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부활과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와 제자들을 데리고 무덤으로 가셨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도 함께 했다. 예수님은 무덤 앞에서 우는 사람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유일한 기록이다.
(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예수님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다.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을 개방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불신하고 있는 마르다에게 말씀하신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마르다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서 나오기 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근시안적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연상케 하듯 감사로 시작하셨다.
(요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셨다. 모두가 긴장한 채 무덤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죽은 사람이 걸어서 나오는 것이었다.
(요11:43-44)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나사로가 다시 살아남으로 장례식은 의미없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유대인들의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위급한 소식을 듣고 이틀 간 더 지체하신 것은 나사로와 두 자매와 제자들과 많은 유대인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참된 것을 보게 하고, 참된 것은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응답이 지체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더 큰 영광 가운데로, 더 큰 은혜 가운데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인 것이다. 주님은 결코 늦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욕심이 그렇게 느끼게 할 뿐이다.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면 반드시 기적은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