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2
[2] 아담부부와 다르게 살아가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축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암수를 지으셨다. 이는 번식, 곧 번성을 위함이었다. 다만 암수를 맞추지 않은 존재는 사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은 아담이 외로움에 절절매는 것을 보시고 짝, 곧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신다(창2:18).
아담의 아내는 모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늦게 지어진 존재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아담이 깊은 잠을 자는 동안 하와가 지음받았다. 하와의 근원은 아담의 갈빗대이다. 아담은 하와를 보자마자 미친듯이 사랑에 빠지고 만다. 아담은 하와와 일심동체임을 선언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아담과 하와는 골육(骨肉), 곧 한 몸이었기에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가장 월등한 지위를 가지고 살아갔다. 아담은 에덴동산의 관리직을 부여받았고,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주었다. 아담이 어떤 가축을 부르면 이름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영적인 권위가 아담에게 주어졌다(창2:15).
에덴동산에는 평화가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고, 아담은 모든 생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렸다. 에덴은 평화의 동산이었다. 그러나 평화를 깨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바로 뱀이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가장 간교했다(창3:1).
뱀은 하와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하와를 자기의 논리로 설득한다. 아마도 하와가 아담에 비해 논리적인 사고가 약했나보다. 뱀이 질문한다.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느냐?'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고 쓸데없는 질문이다.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하와는 순진하게 선악과만 빼고 다 먹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뱀은 하와에게 말한다. '아니다. 선악과를 먹어도 된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신 것은 너무 이기적인 처사이다. 너희가 먹으면 하나님처럼 지혜로워질 것을 염려하신 까닭이다' 라며 설득한다.
하와는 선악과를 바라본다. 뱀의 말을 듣고 나서 선악과를 보니 정말 군침이 도는 과실수였다. 뱀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와는 이미 판단력을 잃었다. 그리고 스스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멈칫 멈칫 하는 남편의 입에도 선악과를 쑤셔 넣어 주었다. 부부는 공범이 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후 가장 먼저 찾아온 반응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굴이 처음으로 붉어졌다. 그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범죄라는 것을 내면으로부터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
이 사건으로 아담 부부는 에덴동산에 추방되고, 땅을 경작하며 살아가게 된다. 에덴동산 관리인에서 땅을 갈아엎어 농사 짓는 자로 신분이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 고생 길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럼 뱀은 어찌 되었는가? 하나님의 가정을 타락의 길로 안내한 뱀은 저주를 받았다.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하나님은 뱀에게 '평생에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것이라' 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실제로 뱀이 흙을 먹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뱀은 쥐 같은 설치류를 잡아 먹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말씀은 땅을 기어다니면서 흙을 핥아 먹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다스리며 살았던 에덴동산은 낙원(paradise)이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죄에 대해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뱀을 탓한다. 자기들이 범죄하게 된 것은 오직 뱀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항변했다. 그러나 핑계일 뿐이다.
(창3:12-13)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 부부처럼 뱀, 곧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면 안된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야 했다. 그리고 어떤 논리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조금 흐트러지거나 빈 틈이 생기면 마귀는 어김없이 우리 귀에 속삭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마귀는 논리를 동원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일까? 내 생각에는 가룟 유다이다. 그는 제자들 가운데서 봉사도 잘하고 생각도 민첩해서 돈 궤를 맡았던 사람이다. 요즘 말로 모임의 총무이다.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은 삼십냥에 팔고 말았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가룟 유다는 마귀의 꾀임에 잠시 넘어 갔을 뿐이라며 핑계할 수 없다. 마귀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어 주었을 때 정신을 차리고 그 생각을 떨쳐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악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다가 실행하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자 후회하고 스스로 목 매어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할 사람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다. 그는 정말 잘못 믿었고 잘못 살았다.
그런고로 세상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차단하고, 마귀가 잘못된 욕심을 불어 넣어준다 해도 신속하게 떨쳐 버려야 한다. 아담과 하와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선 안된다.
우리가 귀 기울일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파묻혀 살아가면 마귀의 속삭임은 찻 잔 속의 태풍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 아담과 하와 부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는 했지만 말씀을 지킬 의지가 부족했다. 믿음이 부족했다.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말씀을 준행하는데 까지 나아가야 승리할 수 있다. 마귀마저도 인정하는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좋은 환경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기쁨으로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의 소리와 마귀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고로 평안할 때 부족함이 없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 귀 기울이고 집중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