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4
[4] 룻, 신앙에 인생을 걸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경우는 전쟁이나 기근(흉년)이 중요한 이유였다. 물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소명을 쫓아 옮겨가는 경우도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여러 번의 기근이 기록되어 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바로왕의 꿈 얘기를 듣고 7년 풍년과 7년 기근을 예언했다. 7년 정도의 극심한 흉년은 나라의 존폐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재앙이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로 임명되어 애굽을 그 위기에서 건져냈다.
아브라함 때도, 이삭 때도 큰 기근(흉년)이 있었다. 엘리야 선지자 때도 3년 6개월의 기근이 있었다. 사사시대 때도 기근(가뭄)이 있었다. 이렇게 시대마다 기근은 단골 손님처럼 찾아왔다.
사사시대 때 유대 땅에 극심한 흉년이 닥치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방 모압 땅으로 이주한 가정이 있었다. 베들레헴 사람 엘리멜렉의 가정이다. 엘리멜렉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그들 앞에 드리워져 있는 불행을 예견하지 못했다. 다 잘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들은 모압 땅에 오래 머물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이방여인 모압 처녀들을 아내로 얻게 해 주었다. 며느리들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다. 만약 임시로 머물 생각이었으면 굳이 이방 여인들을 며느리로 삼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멜렉이 갑자기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마저 십년 쯤 후에 죽고 말았다. 왜 죽었는지는 성경에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제 나오미와 이방 며느리들만 남게 되었다. 잘 살아 보겠다고 모압 땅에 왔는데 소중한 사람들을 다 잃고 말았다. 나오미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녀가 좌절했을 것은 당연하다. 의지할 남편도 아들들도 다 떠났기 때문이다.
그 무렵 들려온 소식이 있었다. 유대 땅에 흉년이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그 땅에 복을 주셨다는 소문이었다. 나오미는 번민했을 것이다. 계속 모압 땅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유대 땅으로 돌아갈 것인가? 만약 유대 땅으로 돌아간다면 고향 사람들의 오해와 따가운 시선을 어떻게 할까? 등 이런 생각으로 괴로운 밤을 보냈을 것이다. 믿음없이 이방 땅으로 가더니 빈털터리로 돌아왔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입방아를 찧을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오미는 유대 땅을 선택한다. 욕을 먹더라도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모압 땅에서의 십여년은 영적으로 피폐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불신앙은 돌이키고 싶었을 것이다.
나오미는 결심이 서자 두 며느리에게 얘기한다. 유대 땅으로 같이 가자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테니 너희는 너희의 신에게로 돌아가라는 권면을 하고자 함이었다. 두 며느리는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했지만 오르바는 시어머니와 작별을 고하고 떠나갔다. 하지만 룻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룻은 어쩌면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지를 많이 고민하고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룻은 나오미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렇게 고백한다.
(룻1:16-17)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에게 신앙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잘 보이기 위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일까? 아마도 오르바가 먼저 친정으로 돌아간 상황이기에 미사여구는 아닐 것이다. 짐작하건대 나오미를 통해 여호와 신앙에 대해 어깨 너머로 배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오미는 이런 룻의 신앙적 결단을 보고 유대 땅으로 동행하기로 한다.
고향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환영했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나오미 때문에 떠들었다고 말씀한다(룻1:19). 아마도 부정의 의미일 것이다. 큰 소리 치며 나가더니 지금 그 꼴이 뭐냐? 이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나오미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징벌하셨다고만 말한다. 나오미는 이 한마디로 지난 10년을 설명했다(룻1:21).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남편도 없는데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먼 곳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결국 자기 친족인 보아스에게 룻을 보낸다. 그의 아내가 되게 한다. 이것은 유대 관습에 따른 계대결혼법(시형제결혼법)이다.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미망인과 재혼하여 첫 아들을 죽은 형제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하는 관습법이다.
그리고 보아스와 룻,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족보가 만들어진다. 이들에게서 오벳이 태어나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는다. 그리고 다윗왕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
(룻4:21-22)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1:5-6)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구약성경 룻기는 성공한 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룻은 몇 번의 갈등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유대인과 결혼해야 할까? 남편도 죽은 마당에 시어머니와 계속 살아야 할까? 시어머니를 따라 유대 땅으로 가야 할까? 시어머니의 권유대로 시댁 친척인 보아스와 재혼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룻의 선택은 모두 훌륭했다. 특히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은 룻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만약 룻이 시어머니에 의해 억지로 유대 땅으로 끌려왔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거부했다면 룻은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다윗왕의 증조 할머니로서의 명예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서의 영광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신앙이 룻의 신앙이었다. 룻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을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최우선이자, 최종적인 선택이라고 믿었다. 신약성경의 개념으로 보면 하나님이 그녀에게 알파와 오메가였던 것이다.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
오늘 어려운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거의 2,500년 전에 살았던 룻이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