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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결국 사랑이 이긴다'

문학n천국 2022. 2. 19. 23:54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6

[6] 결국 사랑이 이긴다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서를 종합해 볼 때 다윗왕에게는 열 아홉 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솔로몬은 그 중에 열 번째 아들이다. 솔로몬의 형들 가운데 첫째 암논, 셋째 압살롬, 넷째 아도니야에 대해서 성경이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서 이들은 잘 알려져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위로 이런 쟁쟁한 형들이 있었기에 솔로몬이 왕이 될 가능성은 그만큼 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첫째 암논은 이복 여동생 다말, 곧 압살롬의 동생을 강간했다가 압살롬에 의해 죽임 당했다. 그리고 셋째 압살롬은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임을 당했다. 넷째 아도니야는 다윗왕이 죽기 전 반란을 일으켰다가 솔로몬의 측근 브나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다윗왕이 죽고 정적들이 제거되고 나서 솔로몬은 왕위에 즉위하였다.

성경에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다윗왕의 후계 자리는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나단 선지자 사이에 이미 어떤 밀약이 있었던 같다. 하지만 솔로몬이 열 번째 아들이다보니 공표를 못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들 가운데 분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왕상1:16-18) '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찌 됨이냐 그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이렇게 솔로몬이 왕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정적들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신앙적 퍼포먼스였다. 일천번제는 일천 번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고, 일천 마리의 번제물을 한 번에 불살라 드렸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성경 문맥상 후자가 맞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으셨고 솔로몬이 구하는대로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여기서 지혜는 판단력이라고 번역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임한 후에 솔로몬은 사건 하나를 지혜롭게 판결함으로 비로소 입지를 다지게 되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된다. 그 사건이 바로 두 명의 창녀 가운데서 한 아이의 생모를 찾아주는 판결이었다.

어느 날 두 명의 창녀가 한 아들을 데려와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사연인즉 두 창녀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사흘 간격으로 출산했다. 그런데 A 창녀가 아기를 안고 자다가 아기가 자기 몸에 깔려서 죽고 말았다. A 창녀는 얼른 다른 B 창녀의 아들과 죽은 자기 아들을 바꿔치기 했다.

아침에 보니 B 창녀의 아들이 죽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고 A 창녀의 아들이었다. 아들을 바꿔치기 당한 B 창녀는 자기 아들을 돌려 달라며 왕 앞에 나와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 것이다.

요즘이야 유전자 검사를 하면 쉽게 진위를 가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이때 솔로몬이 판결을 내린다. 아이를 데려다가 칼로 나누어 각각 A와 B 창녀에게 주라는 판결이었다. 이것은 아이를 죽이겠다는 얘기이다.

(왕상3:23-25)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아이의 친엄마 되는 B 여인은 왕의 명령을 듣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들을 되찾기 위해 고발한 것인데 오히려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B 여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왕께 간구한다.

(왕상3:26)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B 여인의 마음은 자기가 무고죄로 처벌을 받더라도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A 여인에게 주고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게 된다. 하지만 A 여인은 공평하게 나누자며 왕의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왕은 이 B 여인이 진짜 엄마가 맞다고 판결해 주었다. 모성애로 확인한 판결이었다. 요즘도 훌륭한 판결에 대해 솔로몬의 판결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솔로몬을 칭송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엄마의 자격이나 권리를 내려놓은 B 여인에 대해 논하기 위함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그것을 내려놓는 엄마의 마음을 칭송하기 위함이다. B 여인은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음에도 불행한 일에 연루되어 억울한 처지가 되었다. 하나 밖에 없는 분신과도 같은 자식을 포기해야 했다. 엄마가 자식을 포기하는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지만 자식을 지켜야 하기에 망설임 없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마 짐작하건대 솔로몬이 이 여인을 위로하고 명예를 높여 주지 않았을까? 내 것도 네 것도 되게 하지 말자고 소리쳤던 A 여인에게는 형벌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요일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말씀한다. 그렇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걸 확인시켜 준다. 그런데 이 사랑은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었다.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지신 것은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 사랑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천한 창녀이지만 그녀는 참사랑을 아는 여인이었다. 결국 사랑이 이긴다. 결국 주님이 세상을 이긴다. 결국 믿음이 죄를 이긴다. 이 평범한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