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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문학n천국 2022. 2. 28. 19:22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1

[11]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고대 근동지역의 패권은 앗수르 제국에서 바벨론 제국으로,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으로, 헬라 제국으로,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남쪽에는 애굽이 호시탐탐 북방 정벌을 노리고 있었다.

이 제국들 틈바구니에서 늘 생존을 위협 받은 민족이 유대민족이다. 그리고 이 제국들이 유대와 이스라엘 땅을 위태롭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우셔서 백성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만 하면 평안하리라고 선포하게 하셨다. 늑대와 이리들 가운데 있는 순한 양이 이스라엘 곧, 유대 민족이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할 무렵 활동한 선지자는 예레미야와 스바냐와 하박국이다. 이들은 유대 민족의 멸망을 지켜 본 선지자이자 예언자들이었다. 이들은 민족을 위해 늘 기도로 호흡하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하박국은 바벨론의 말 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상황에서 제2의 시편이라 불리는 하박국서를 기록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왜 의인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반드시 벌하실 것이라 말씀하시며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응답하셨다(2:4). 하박국이 모든 것을 상실한다 해도 하나님을 기뻐하겠다는 신학적인 근거는 바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 때문이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공 소식을 듣고 창자가 떨리고 입술이 떨리고 몸이 떨렸다고 고백한다.
(합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전쟁은 대단히 공포스러운 것이다. 모든 일상이 멈춰질 뿐아니라 목숨을 지키려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선지자에게도 동일했다. 하박국은 입술과 마음과 몸이 떨리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잠깐 공포에 붙들렸으나 곧 자기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노래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합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무화과가 없어도, 포도 열매가 없어도, 감람나무 소출이 없어도, 밭에 소출이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즐거워 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았는데 바로 하나님이었다. 이렇게 하박국처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즐거워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할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지하 감옥에 갇혔다. 매를 많이 맞았다. 발에 차꼬가 채워졌다. 몸을 자유롭게 가눌 수가 없다. 몸은 피곤하고 매 맞은 자리는 아프고 발이 차꼬에 채워져 있어 불편하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딱 좋은 상황아닐까? 술집에서 술 마시다 끌려온 것도 아니고 복음 전하다가 끌려왔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 찬송 소리를 다른 죄수들이 들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다른 죄수들이 소리치거나 항의해야 자연스럽다. '잠 좀 자자' 며 성질을 부려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모든 죄수들은 듣고만 있었다. 아마 그들 생각엔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을 한밤중에 찬송하게 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바울과 실라는 매 맞은 자리의 고통을 잊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만지심을 경험했던 것 같다. 버린 바 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붙드심과 임재가 이렇게 그들로 찬송하게 했을 것이다. 이들을 보면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일이 환경을 뛰어 넘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느헤미야 총독의 감독 아래 52일에 걸쳐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마쳤다. 그리고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낭독했다. 레위인들은 아람어로 통역했다. 오랜 포로 생활로 모국어를 잊어버리고 아람어를 썼던 유대 백성들을 위함이었다. 여호와의 율법을 들은 백성들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비로소 고국 땅에서 듣는 율법의 말씀에 감격했기 때문이다.

울음바다가 된 백성들에게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권면한다.
(느8:9-10)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여기서 힘은 피난처, 방파제, 요새라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세상의 풍파와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길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슴처럼 높은 곳을 달리게 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은 거침이 없는 것이다.

하박국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스바냐 선지자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권면한다.

(습3:14-17)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의 힘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다. 우리의 궁극적 힘은 세상 명예와 권력, 부귀영화에 있지 않다. 우리의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고통과 아픔 속에 인생의 문제에 짓눌려 낮고 낮은 곳을 헤매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힘 주심으로 우리는 높은 곳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영적인 지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