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2
[12] 인생, 그거 쉽지 않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11장은 그들의 삶을 가능한 짧은 문장으로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보면 어느 누구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된다.
노아는 120년을 목수가 되어 방주를 제작해야 했다. 그의 믿음은 수십 만 번의 톱질과 망치질로 승화되었다. 축구장 만한 배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목공교실이 아니다. 막노동이다. 그리고 이 수고는 헛되지 않아 그의 가족 8명만이 유일하게 구원받는 특별한 은혜를 허락받았다. 노아, 그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지만 땀으로 범벅된 인생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목적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그저 지시하시는 땅이라는 막연한 곳을 향하여 믿음으로 걸어 나아갔다. 이리저리 떠돌다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가 되어 이제 누가 봐도 노인인 두 사람에게 이삭이라는 금쪽같은 아들을 주셨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아들이 이쁘게 잘 자라가고 있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피가 거꾸로 솟구칠 상상초월의 명령 앞에 아브라함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는데 아들까지 요구하시다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쓰(yes God) 라고 대답한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 했던가? 평생 믿음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보상이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결과가 된 것이다. 부인 사라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가슴을 쥐어 뜯었을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그래서일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 위대한 칭호를 수여받기 까지 아브라함의 마음의 주름살은 늘어만 갔다. 아브라함, 그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요셉은 애굽 총리라는 화려한 직함 뒤에 가려진 조금은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배 다른 이복 형과 누나가 11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배 다른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리고 말았다. 남 보다 더 못한 형들을 원망했을 그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청춘 시절을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요셉은 가장 꽃다운 청춘을 노예로 살아야 했다. 노예에게는 인권이 없었고 짐승처럼 취급당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서 최소한의 인격은 지킬 수 있지만 그땐 지금과 달랐다.
그것도 경력이라고 노예 13년차 되던 어느날, 서른 살이 된 요셉에게 왕의 꿈을 해석해 줄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양 날의 칼이었다. 해석이 틀리면 목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감히 왕을 상대로 꿈해몽으로 사기를 쳤다며 엄벌에 처해질 수 있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지혜로 꿈을 해석해 주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차원의 꿈 해석을 듣고 바로왕은 요셉의 노예 신분을 파하고 총리로 임명하게 되었다.
꿈 해석에 얼마나 믿음이 갔으면 몇 년 후의 일 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 7년 풍년과 7년 흉년 동안 나라 살림을 이끌 전권을 위임했다. 요셉,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인생이었다.
모세는 어떠했는가?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엄마 품을 떠나야 했다. 엄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갈대상자에 그를 넣어 나일강에 흘려 보내야 했다. 그곳은 애굽 공주가 수영을 즐기던 지점이었다. 예상대로 공주가 갈대상자 안의 아기 모세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았다. 물론 노예인 히브리 민족 아이임을 알았지만 공주의 아들로 입양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었다.
모세는 나이 사십 세에 궁궐을 떠나 광야로 나갔다. 좋게 말하면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받기 위함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애굽인을 살해한 살인범으로 쫓겨서 나간 것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리고 80세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의 자격으로 바로왕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을 거쳐 가나안땅 입구까지 인도하고 임종하게 된다. 모세, 그의 인생 120년 가운데 80년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모세, 그의 인생도 쉽지 않았다.
다윗은 목동이었다. 이새의 막내 여덟째 아들이다. 잘하는 거라곤 물매를 잘 던지는 것이었다. 양을 늑대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익혀 두었던 그의 필살기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다윗을 왕으로 지목하셨다고 통보받았다.
그렇다고 곧바로 왕이 된 것은 아니었고, 십 수년을 훌쩍 넘겨 사울왕이 폐위되고 나서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뜻하지 않게 적장인 골리앗과 맞짱을 뜨게 된다. 다윗은 주특기인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게 했다. 골리앗은 돌멩이 하나 얻어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골리앗은 정말 폼 안나게 죽은 대표적인 장수가 되었다.
이후에 다윗은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다윗에게 백성들의 인기 쏠림현상이 나타나자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 했다. 그래서 다윗은 뜻하지 않게 십 수년을 이슬 맞으며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위대한 왕 다윗, 그의 인생도 결코 쉽지 않았다.
이렇게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도 쉬웠다거나 평탄한 인생은 없었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은 '인생, 쉽지 않다' 이다. 하지만 노예가 총리가 되고, 목동이 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예의 아들이 왕자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우리가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당장 눈에 보이는 기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긴 호흡이다. 긴 호흡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자기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명예를 얻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이 말씀은 우리가 열심히 살아야만 얻어지는 결과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선한 능력으로, 선한 결말을 준비해 가시는 과정을 우리로 보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선한 결말을 선물로 준비하신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고난을 만나면 하나님께 '왜 (why)?' 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네 주님!(yes Lord)' 이라고 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지지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