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15
[15] 삶을 끝까지 살아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게 되었다. 당시 예수님은 유대 땅과 갈릴리 지역을 오가며 종횡무진(縱橫無盡)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베이스 캠프(base camp)로 삼으신 곳은 가버나움(Capernaum)이다. 어떤 학자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가버나움까지 도보로 35시간 정도 소요되었을 거라고 한다.
예수님 일행이 사마리아성 수가라는 마을을 지나실 때는 여섯 시 쯤 되었다. 유대인은 오전 6시를 기준 시각으로 하니 여섯 시는 정오가 된다. 가장 무더운 시간이다. 예수님은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고 그 사이 제자들은 마을에 먹을 것을 사러 들어갔다.
(요4:6,8)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마침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 보통 여인네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는 시간은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 시간이다. 낮더위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사람들을 피해 가장 무더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이 여인이 사람들을 피해 정오에 우물에 오는 사연은 곧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님은 먼저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이 또한 의외의 일이다. 보통 유대인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과 말을 나누지 않는다. 하물며 이방인 취급받던 사마리아 여인일까? 그 여자도 예수님의 말 건넴에 매우 의아해 한다.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자신만이 영원한 샘물을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여자는 그 샘물을 사모하며 그 샘물을 얻기를 구한다. 대화 중에 예수님은 뜬금없이 여자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다. 여자는 남편이 없노라고 대답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요4:17-1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꿰뜷어 보자 놀라며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긴다. 여자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다는 것은 남편이 연거푸 사망했던지, 아니면 연거푸 버림 받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남자는 남편이 아닌 동거남이라 추측할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여자가 창녀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기구(崎嶇)한 운명의 여인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혹은 저주하며 살아가던 삶이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또한 사람을 만나기를 두려워 하는 것으로 보아 우울감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여자는 예수님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곧 예배에 관한 질문이었다. 여자에게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예배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배드리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요4:21,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비로소 여자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신다. 그러자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예수님께로 나아왔고 동네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요4:26,28-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4:39)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 여인의 삶은 우리에게 삶을 끝까지 살아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연거푸 죽어서 불행한 여인이 되었을지라도, 남들이 재수없다고 욕해도, 우울감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도 삶을 끝까지 붙잡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주님께서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몸부림 치는 사람을 돌아보시기 때문이다.
이 여자가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예배였다. 그래서 어디서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은 그녀의 영적인 갈급함에 주목하셨다. 다섯 번의 결혼을 연거푸 실패하고 지금은 동거 중인 여자, 동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여자, 그러나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여인은 결국 그리스도를 만나 새 삶을 살게 되었다.
사람이 어디까지 불행해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잃어야 최악이라고 할까? 성경의 인물 가운데 욥 만큼 잃어본 사람이 있을까? 욥은 당시 모든 권세자들까지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고 말씀한다. 욥은 모든 것을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욥29:8-13)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그런데 욥이 이 모든 것을 한 날 한 시에 다 잃고 말았다. 재앙이 닥친 것이다. 욥에게는10 남매가 있었는데 다 죽었다. 수많은 가축떼가 있었는데 스바 사람들이 쳐들어와 칼로 다 빼앗아 갔다. 이제 욥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욥은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소망을 붙잡았다. 저주스런 상황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찬송했다.
(욥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지금 어려운가? 더이상 버티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아직은 끝이 아니다. 소망을 가져야 한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상황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회복시키시고 승리케 하실 것이다.
(욥42:12-13)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사람을 멀리했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상처를 치유받고 예수를 전하게 되었다. 분명 여자의 남은 인생은 예수 안에서 당당하고 행복했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의 삶을 살아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