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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복음은 축복이다'

문학n천국 2022. 4. 18. 01:52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2

[32] 복음은 축복이다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기독교를 가장 먼저 국교로 인정한 나라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뿌리가 스바(Sheba)여왕과 솔로몬왕 사이에서 태어난 메네릭 1세라 믿고 있다. 곧 자신들이 솔로몬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고대 역사문서에 스바 여왕의 이름은 마케다이고, 마케다와 솔로몬왕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메네릭 1세이고, 그가 에디오피아를 건국했다고 한다.

스바(Sheba)여왕에 대한 기록은 구약성경, 신약 성경, 코란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역사서인 아베산(Habeshan), 이렇게 네 개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은 시기는 B.C. 10세기 경이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왕을 찾아 온 이유는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2,400km나 되는 먼 거리인데 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왔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의 목적이 아니라 솔로몬에게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왕이 가져온 금 일백 이십 달란트를 오늘날의 무게로 환산하면 금 4.5톤 쯤 된다고 한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마음 속에 있는 풀지 못한 모든 문제를 질문했다. 그리고 솔로몬의 대답은 스바여왕의 마음을 청량음료처럼 시원케 했다. 스바 여왕은 또 솔로몬에게 개인적인 요구를 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에티오피아 역사서에는 솔로몬 같은 지혜로운 아들을 얻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그래서 태어난 사람이 메네릭1세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열왕기상 10장이 두 사람의 로맨스를 알리기 위해 기록된 것은 아니다.

(왕상10:13)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솔로몬의 지혜는 일천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혜이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히 똑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뛰어난 식견, 다시말해 분별력(discernment)이라 할 수 있다.

(왕상3: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스바여왕은 솔로몬왕의 지혜를 듣고 그를 칭송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왕에게 예물을 드렸다.
(왕상10:7)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왕상10:9-10)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우리가 3,000년 전 인물인 스바 여왕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러 왔다는 것은 세상 학문이나 철학을 배우러 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탐구를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 지식을 얻기 위함이었다면 신하들을 이스라엘로 유학을 보내 배워 오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예물과 수행원들을 대동(帶同)하고 왔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 곧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컸다는 것이다.

진리를 찾는 일에 스바 여왕 만큼 많은 비용과 시간을 지불한 사람이 있을까? 진리를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한 사람이 있을까? 자신은 요지부동(搖之不動)하면서 자기 안에 진리와 은혜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온당(穩當)한 태도가 아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8장에 보면 한 순례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바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의 이야기다. 그는 고위관로이다. 내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예배를 위해 휴가를 내어 많은 시간을 드리고 수고를 하고 있는 이 사람도 스바 여왕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행8:27-28)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내시는 심심하고 무료(無聊)해서 구약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을까? 이 또한 진리에 대한 탐구가 아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빌립 집사를 보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세례를 받게 하셨다. 이방인인 그를 받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이다.

(행8: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예수 믿겠다고 한마디만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은혜를 때마다 일마다 가득 부어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 또한 거저 되지 않는다. 내 삶을 드리지 못하면서 툭 내뱉는 한마디 신앙고백은 위선일 뿐이다.

스바 여왕에게 부족한 게 있었을까? 스바 여왕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의 질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진리에 대한 갈급함은 결국 여왕으로 하여금 먼 길을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고속철도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3,000년 전에 2,400km 거리의 여행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왕에게는 그 길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설렘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성경이 있고, 대중교통 한 번이면 편안한 예배당에 앉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찬양을 듣고 부를 수가 있다. 대문만 나서면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인터넷을 열면 2,400km 밖에 있는 사람과 마주 보며 은혜를 나눌 수 있다.

스바 여왕의 수 개월 동안의 순례 여행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고 민족의 앞날을 밝혔을 것이다. 진리 곧 복음을 붙들기 위한 스바 여왕의 결단을 보며 오늘 우리도 도전을 받아야겠다. 복음은 손실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허비한다 해도 복음은 손해가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엄청난 유익이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도 드려야 하고, 헌금도 드려야 하고, 몸도 드려야 하지만 결국 은혜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복음은 축복이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