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신앙에세이 '인생의 흉년(lean year)은 없다'

문학n천국 2022. 4. 20. 19:56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3

[33] 인생의 흉년(lean year)은 없다

아브라함 때에 큰 흉년(lean year)이 왔다. 학자들에 의하면 그 시기는 B.C.2090년 경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삭의 때에도 큰 흉년(凶年)이 찾아왔는데 그 시기는 B.C.1990년 경이었다고 한다. 다시말해 100년 만에 다시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임했던 것이다. 창42:5절에 의하면 이같은 큰 흉년은 야곱의 시대에도 다시 찾아왔다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두 가나안 땅에서 한 번씩은 큰 흉년을 경험한 것이 된다. 농경생활과 유목생활에 의존하던 당시에 큰 흉년은 생계에 직접적으로 큰 타격이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큰 흉년 곧 기근이 오자 곧장 애굽으로 내려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 사라를 바로왕에게 빼앗기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창12장). 흉년이 가정의 위기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경험을 그의 아들도 똑같이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 갔다가 부인 사라를 빼앗겼고(창12장), 또 그랄 땅에 들어가 살 때도 아비멜렉왕이 사라를 데려가고 말았다(창20장). 두번 씩이나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애처가들 입장에서 아브라함은 무능한 남편들 세계에서 절대강자이다.

두 번 모두 하나님께서 바로왕과 아비멜렉왕에게 나타나 경고하심으로 가까스로 아내를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아브라함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이고 경험이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흉년이 오자 브엘라해로이에서 살다가 가까운 그랄 땅으로 옮겨 살았었는데 그때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려가고 말았다(창26장).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그런데 부전자전,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내를 대하는 방법도 비슷했다. 두 사람은 아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빼앗아 갈 것이라 생각하고 두 사람 모두 아내들에게 자기를 오라버니로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위기를 자초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삭은 본래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흉년의 징조가 있자 가까운 그랄 땅으로 옮겨갔다. 임시로 주거지를 옮긴 것이다. 아마도 오래 있을 계획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흉년이 극심해지자 애굽에 내려갈 마음을 먹었다. 애굽에는 나일강이 있어 비옥하고, 목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시 애굽에 흉년 소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삭이 애굽 이주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창26:2-4)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한마디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한다. 이방인의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백 배를 얻은 것이다. 그것도 흉년에 얻은 결실이다.

아마 그랄 땅 사람들 가운데 그 해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거두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삭은 말씀에 순종했다가 기적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흉년이나 재앙에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창26:12-13)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큰 복을 주시자 아비멜렉 왕은 놀란 나머지 이삭에게 찾아와 자기 땅을 떠나주기를 부탁하는 상황까지 연출된다. 그래서 이삭은 아비멜렉을 떠나 브엘세바에 가서 정착하게 된다.
(창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창26: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고 거부가 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서 물이 부족하고 땅이 갈라지는 상황에 농사로 거부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소보다 백 배를 더 거두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쏟아부어 주셨다는 뜻이다.

보통 풍년(豊年)은 평년(平年) 보다 더 많이 수확한 것을 말한다. 농부의 아들로서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평년보다 두 배만 수확해도 풍년이라 했었던 어른들의 말이 기억이 난다. 그런고로 백 배는 농사일에서 있을 수 없는 하나의 기념비(紀念碑)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인생의 흉년을 만났을 때 그것을 새로운 곳에 가라는 신호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겠다. 오히려 묵묵히 씨를 뿌리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의 생각을 쫓아 나아가게 되면 아브라함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인생의 흉년일수록 조급한 결정보다는 느린 속도로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이때는 눈에 보여지는 것이 오히려 인생을 날려버릴 위험한 폭발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인물 가운데 흉년의 때를 잘 보낸 사람이 있다. 바로 사르밧 과부이다. 이 과부의 집의 통에는 마지막 한끼 분량도 되지 않을 적은 양의 밀가루만 남아 있었다. 이제 마지막 떡을 구워먹고 아들과 삶을 마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 집에 손님이 방문한다. 엘리야 선지자이다. 초대한 적도 없는데 집에 찾아와서는 대뜸 떡 한 조각을 구워오라고 요구한다. 과부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과부의 마음을 감동하셨기에 마지막 떡을 만들어 선지자에게 드렸다. 마지막 한 끼로 섬김을 한 것이다. 그랬더니 선지자의 말처럼 삼년 육개월 동안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왕상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왕상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은연 중에 내가 흉년이면 하나님께서도 흉년을 겪으실 거라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이다. 하나님께는 흉년이 없다. 불경기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는 오병이어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 이삭의 백 배 축복 같은 축적된 경험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복을 부어주실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오늘 우리가 이삭 같은, 사르밧 과부 같은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쩔수 없어서 하는 순종이 아닌, 능동적인 순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