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5
[35] 가이사(Caesar)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유대교(Judaism)는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이다. 이 유대교 안에도 여러 분파가 있었다. 분파가 나누어진 시기는 신구약 중간 시대, 곧 B.C.4세기 경부터이다.
먼저 사두개파(Sadducees)는 제사장 사독의 후손들로 제사장 계급을 독점했다. 사두개파는 소수의 분파이지만 재산이 많았고, 선도적인 입장에 있었다. 사두개파는 정치적 색채가 강했고, 바리새파와는 대립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한 뒤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두개파는 소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고, 부활도 천사도 마귀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았다.
바리새파(Pharisees)는 유대교의 최대 분파이고 예수님과 가장 빈번하게 갈등을 겪었다. 오늘날에는 랍비 유대교로 명맥을 잇고 있다. 이들은 외국의 사상이나 문화에 대해 비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신약성경에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사도바울이 바리새파 출신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믿었고, 부활도 천사도 마귀의 존재도 믿었다.
엣세네파(Essenes)는 유대광야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분파이다. 성경에는 그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이 거주하던 쿰란지역에서 성경 최초의 사본인 사해사본이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열심당(Zealot)이 있다. 이들은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했으며 폭력을 인정했다. 일종의 해방 신학자들이었다. 또한 헤롯당원(Herodian)이 있다. 이들은 헤롯 왕가에서 메시야가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유대교 분파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늘 공공의 적(Public Enemy, 公共- 敵)이었다. 예수님 스스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연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계획을 세웠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 문제에 있어서 바리새파는 반대를, 헤롯당원들은 찬성했다. 그럼에도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책잡으려 했다.
(마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여기서 만약 세금을 내라고 하면 로마의 식민통치를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악한 계획을 이미 간파하고 계셨다. 그래서 세금 낼 돈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데나리온 하나를 제시했다.
(마22:18-20)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예수님은 데나리온에 새겨져 있는 형상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며 답을 말씀하셨다.
사실 세금은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가가 운영될 수 없고 국민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보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롬13:6-7)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은 결코 굴욕이 아니다. 오히려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지 않았을 때 내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은 평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강을 빼앗기면 우리가 목숨처럼 지키고자 하는 신앙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처럼 평강을 빼앗기면 교회의 신앙도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허비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목적에 맞는 쓰임새(uasge)를 할 줄 알아야 하겠다. 가이사를 위한 목적의 재물은 그에게로 흘러가야 아름다운 것이다. 통치 자금은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초대 사울왕 시절처럼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군인들에게 나눠줄 창 칼이 없으면 나라도 신앙도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삼상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오직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로만 가야 한다는 생각은 얼핏 대단한 믿음으로 비쳐지지만, 국력이 약해지면 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로 보낼 때에 즐거움과 감사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섬김을 위한 물질은 이웃에게로 흘려 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공동체가 있어야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불장군은 공동체도 그리고 자신도 망가뜨리고 만다. 섬김을 위한 것은 이웃에게로 흘려 보내야 한다. 이웃에게로 흘려 보내는 선한 물질은 다시 우리 삶으로 흘러 들어올 것이다.
(전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에 대한 감사, 은혜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이다. 출애굽 후 드림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제물 드림에 대해 명령하셨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물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물질은 어디서 났을까?
(출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품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이 출애굽을 할 때 애굽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물질은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것들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은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레위기 율법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받기 원하시는 제물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제사의 방법에는 동물, 식물, 액체로 분향하는 방법이 있었고, 동물제사의 종류로는 (1)번제(燔祭) (2)화제 (3)속죄제(贖罪祭) (4)속건제(贖愆祭) (5)화목제(和睦祭) (6)요제(搖祭)가 있고, 다른 제사 종류로는 (1)곡식을 드리는 소제(素祭)와 (2)술을 부어 드리는 전제(奠祭)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어느 것 하나라도 차별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가이사에게로 즐거이 흘려 보내고, 이웃에게도 즐거이 흘려 보내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