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39
[39] 과부의 두 렙돈(Lepton)
어느날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신 후 헌금함이 있는 곳 맞은 편에 앉아 계셨다. 그리고 그때 헌금하기 위해 나온 성도들을 보셨다. 여러 명의 부자들이 와서 풍성한 헌금을 헌금함에 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두 렙돈(Lepton),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셨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방인들에게도 개방되었던 '이방인의 뜰'(Court of the Gentiles)과 이스라엘의 남자와 여자들을 위한 '여인들의 뜰'(Court of the Women)과 이스라엘의 남자들만을 위한 '이스라엘의 뜰'(Court of the Israelites) 그리고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된 '제사장들의 뜰'(Court of the Priests)이 있었다.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것으로 볼 때 성전 안 여인의 뜰에서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다. 렙돈은 동전이다. 팔레스틴 등 로마제국 동부 지역에서 사용되던 소액의 동전이다. 두 렙돈을 로마제국 서부지역에서 사용되던 동전으로 환산하면 한 고드란트였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데 렙돈은 한 데나리온의 1/64 정도 되는 적은 금액이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0만원이라고 가정한다면 한 렙돈은 약 1,500원 정도이다. 두 렙돈이면 3,000원 정도이다. 과부가 드린 헌금의 액수는 아주 소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과부를 칭찬하셨다. 과부가 드린 헌금의 액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미미함에도 과부를 칭찬하신 이유는 과부의 믿음 때문이다.
(막12:41-44)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과부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다고 예수님은 칭찬하셨다. 자기를 위한 물질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믿음으로 다 드린 것이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이 사건을 소개할 때 과부의 믿음과 헌금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풍성한 헌금을 드린 부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부유한 것은 죄가 아니다. 재물이 풍성한 것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부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풍성한 헌금을 드린 것 또한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였고 영광이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먼저 헌금했던 부자들은 뒤따라온 가난한 과부와 같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렙돈이 전부인 가난한 과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드리고 싶어도, 나누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자들도 예수님께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은 경건에 속한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과부보다 먼저 헌금했던 부자들이 이런 경건한 사람들이었기를 소망해 본다. 부자가 부유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나름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섬기는 삶으로의 부르심인 것이다.
이 땅에 두 렙돈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가난하여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섬기는 사명이 부자들에게, 더 많이 배운 사람들에게, 더 건강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본다.
그래서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은 섬김에 있다고 생각한다. 섬김은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행복 평준화가 아닐까? 부자들이 주님 앞에서 행복하다면 가난한 과부도, 버려진 아이들도 주님 앞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부자는 섬김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 과부에게서 배우라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동전을 헌금통에 집어 넣기를 두려워 한다. 워낙 소액이라 누가 볼까봐 걱정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헌금하는 손길을 부끄러워 하지 말 것을 원하신다. 설령 헌금통 안에서 동전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지라도 당당하게 드리길 원하시는 것이다.
벳새다 들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던 오병이어의 기적은 한 아이의 작은 도시락에서 출발했다. 예수님께는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큰 것이 드려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믿음으로 드려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요6:8-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마14:20-21)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한나의 서원기도로 사무엘이 태어났다. 어린 사무엘은 젖을 뗀 후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져 성전에서 성장했다. 이 아이가 이스라엘의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잇는 민족의 지도자로 쓰임 받을 줄 누가 짐작했을까? 사울왕도, 다윗왕도 사무엘 선지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다. 이 위대한 지도자도 한나의 아들 서원기도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삼상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는 오늘날 가난하여 드릴 것이 없다고 한숨 짓는 사람들에게, 능력이 부족하다며 헌신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메시지는 '믿음으로 두 렙돈을 드리라. 두 렙돈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두 렙돈이면 충분하다. 믿음으로 행하면 결과는 주님께서 이루신다' 등이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받으실, 우리의 믿음을 받으실 주님께 드리기를 즐거워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