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 42
[42] 요나처럼 파이팅(Fighting)하자
요나는 B.C. 760년경 북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했던 여로보암 2세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민족은 앗수르였다. 그러나 당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강대국이었지만 나라의 내부적인 문제로 군사력을 외부로 뻗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B.C.765-759년경에 앗수르에는 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B.C.763년 6월 15일경에는 완전한 일식으로 앗수르 땅이 낮에도 칠흙 같은 어둠에 휩싸이는 불길한 징조로 인하여 민심이 크게 동요되어 있었다. 외연확장(extension) 보다 내부단속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요나 선지자가 단 하루 동안만 니느웨에 심판 메시지를 전파하였음에도 전국민 회개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요나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지나고 불과 40년도 안되어 북이스라엘은 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앗수르인들은 잔인하여 원수들을 산 채로 묻어 버리거나, 가죽을 벗기거나, 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장대로 꽂아 두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냉혹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앗수르인(니느웨사람)들을 요나는 당연히 싫어했을 것이고, 원수가 멸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긍휼이 아닌 공의로운 심판이 앗수르 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선지자의 항변(抗辯)이 아니었을까?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의 삯을 지불하고 배 밑 층에 내려가 잠을 청했다. 성경에는 깊은 잠에 빠졌다고 말씀한다. 하지만 같은 시각 배의 선원들은 폭풍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욘1:4-5)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배의 선원들은 그들의 미신적 신앙으로 폭풍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방식대로 찾아낸 원인은 요나였다.
(욘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그런데 요나의 반응이 주목할 만하다. 선원들이 요나에게 당신이 이 재앙의 원인인 것 같다며 추궁할 때 요나는 자신이 재앙의 원인이 맞다며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잠잠할거라고 말한다.
(욘1:9-10)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내가 죽어야 당신들이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나가 비록 불순종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그의 정직한 성품은 그를 선지자로 부름받게 한 원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끝까지 오리발 내밀며 괜한 사람 잡지 말라며 저항했을 것이다.
요나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자신은 징벌 받는게 마땅하다고 고백하자 선원들은 일단 요나를 살리기 위해 힘껏 노를 젓는다. 요나의 용기에 감동했던 것일까?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욘1:12-13)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폭풍이 더욱 거세지자 결국 선원들은 요나의 요구대로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풍랑은 곧 잠잠해졌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는 것은 아마 선원들에게도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욘1: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럼, 바다 폭풍 속에 던져진 요나의 운명은 어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고 말씀한다.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고 말씀한다.
(욘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바다에 던져질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요나를 구원하기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해 놓으셨다. 성서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는 향유고래(sperm whale)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요나는 향유고래의 굉장히 큰 후두 주머니(laryngeal pouch)에 있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고기 뱃 속에서의 요나의 반응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물고기에 삼켜졌다면 가장 먼저 절망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제 끝났다. 점점 숨이 가쁘고(breathless), 위액에 잠기게 되고, 잠들면서 죽겠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 웅크린 자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씀한다. 요나는 불순종했던 믿음 없는 사람이 아닌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기도해서 응답 받는 사람이 요나였던 것이다. 요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로 파이팅(Fighting)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욘2:1-2)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고 응답 받았다는 이들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그러나 고래 뱃 속에서 기도하고 응답 받은 사람은 요나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할 것이다. 나는 요나가 불명예를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불순종의 사람에서 기도의 사람으로 재평가 되기를 바란다.
요나서 2장에 기록된 요나의 기도문에는 물고기 뱃 속에서의 요나의 사흘 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욘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찌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를 생각했다고 말씀한다.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서원도 반드시 갚겠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믿음의 일상도 이와같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 힘들어도 스스로 주저앉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불평은 버리고 감사로 주님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고난 가운데 있다 해도 우리의 서원과 사명에 끝까지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 속에서도 높은 신앙의 품격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요나는 다시 사명의 자리로, 은혜의 자리로, 그리고 일상 가운데로 회복되었다.
(욘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