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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에세이 - 히스기야 (1)

문학n천국 2022. 11. 10. 00:49

성경인물 에세이 - 히스기야 (1)

김상용목사의 성경인물 에세이 {평범하거나, 위대하거나}

[33]  히스기야 - 1

남유다 왕국의 20 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신앙적이었던 왕은 제 13대 왕인 히스기야이다. 히스기야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제 2대 왕인 다윗왕과 함께 신앙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왕하18: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왕하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부왕(父王) 아하스에 의해 닫힌 성전 문을 열고 레위인들을 통해 성전을 정결하게 한다. 그리고 유월절 예배를 부활시킨다(대하 30:21). 또한 우상의 산당과 제단을 제거하고(대하31:1), 백성들 가운데 모세의 놋뱀을 숭배하던 풍습도 없앤다.

(대하30:21)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히스기야는 25세에 남유다 왕이 되었는데 당시 북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치세(治世) 3년 째였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 6년, 곧 호세아 왕 9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왕 살만에셀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B.C.722년).

(왕하18:9-10) '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히스기야는 형제국(兄弟國)인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히스기야는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의 결과라고 판단했다.

(왕하18:12)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히스기야는 북이스라엘 다음으로 남유다를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고 있는 앗수르의 침략에 대비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지하 수로를 팠다. 일명 히스기야의 터널(Hezekiah's Tunnel)이다. 히스기야 터널은 바위를 파서 물 길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길이가 약 525 m이다.

(왕하 20: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앗수르는 성을 공격할 때 대부분 성 안으로 들어가는 수원지(水源地)를 파괴하여 성 안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면 성 안의 백성들은 고립된 상태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이러한 전략을 미리 간파하고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예루살렘 성 안에는 수원지(水源地)가 없고 성 밖 가까운 곳에 기혼 샘(Gihon Spring)이라는 물 근원이 있었다. 하지만 성 밖에 있기 때문에 성이 포위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기혼 샘으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물이 흐르도록 지하 터널(수로)을 만들었다. 이 기혼 샘의 물은 지하 수로를 통해 예루살렘 성 안으로 유입되었고, 예루살렘 성 지하를 S자 모양으로 흘렀고 끝자락에 저수지를 만들어 그 물을 모았다. 

터널이 S자형인 이유는 터널이 다윗성에 있던 왕들의 무덤 밑을 지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터널 수로의 높이는 2~5m, 넓이는 55~65cm 정도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하수로로 흘러온 물을 모아둔 연못이 바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실로암 연못(The Pool of Siloam)이다.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지 14년 째 되던 해에 마침내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Sennacherib)왕이 남유다를 공격해 왔다. 북이스라엘을 점령하는 데 3년이 걸렸던 앗수르 제국은 남유다의 예루살렘 공격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싶었다. 그래서 산헤립은 남유다 언어에 능한 앗수르 장군 랍사게를 내세워 남유다 언어로 심리전(心理戰)을 펼친다. 랍사게는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남유다 백성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지른다.

(왕하18:19-21)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에 히스기야는 왕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며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 기도를 부탁한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사 37:6-7)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있던 그날 밤 남유다에 와 있는 랍사게와 앗수르 군사들을 여호와의 사자가 모두 쳐서 죽였다. 하나님께서 적들의 모든 호흡을 끊어놓는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왕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남유다를 치러 갔던 앗수르의 군사 185,000명은 쥐가 옮긴 급성 전염병 페스트(pest,흑사병)에 감염되어 한꺼번에 죽었다고 기록했다.

그 무렵 산헤립 왕은 앗수르로부터 들려오는 소문, 곧 구스왕 디르하가가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앗수르로 급하게 귀환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앗수르에서 자기가 섬기는 신들에게 경배할 때 자기 아들들인 아드람멜렉(Adrammelech)과 사레셀(Sharezer)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성경에는 산헤립 왕이 남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바로 제거된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0 년 쯤 지나 B.C.681년에 살해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왕하19:9)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

(왕하19:36-37)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절대우위에 있던 앗수르 군대가 활 한번 쏘지 못하고, 칼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전멸당했다. 185,000명이면 현재 대한민국 육군 16개 사단 규모이다. 이 많은 병사들이 하룻밤 사이에 몸에 칼자국 하나도 없이 멀쩡한 상태로 죽은 것이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하나님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어 새로운 길을 언제나 보여주고자 하신다. 인간의 머리로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는 즐겨 하지 않으신다.

홍해바다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마음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바다를 가르는 것이었다. 그 넓고 깊은 바다가 갈라져 마른 땅이 된다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도우신 방법도 기상천외(fantastic)한 시도였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천사들을 동원해 십팔만 오천명의 코를 틀어 막으셨다. 현대 전쟁에서는 독가스(poison gas)를 살포해 대량 인명 살상(殺傷)을 시도한다. 독가스를 마신 사람들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도우신 전쟁에서는 거품도 흘리지 않고 모두 깔끔하게 한순간에 목숨을 앗아가셨다.

하나님을 신앙(信仰)하며 산다는 것은 어쩌면 두려움과 늘 맞서 싸운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주변 환경이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우리를 압도하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만 온전히 붙들면 히스기야의 기적을 우리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이고, 믿음의 승리였다.

(렘33:2-3)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