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많은 사람에게 새 삶을 선물하라
김상용목사의 신앙에세이
{골리앗, 노 프라블럼(Goliath, no problem)}
(부제 : 세상 앞에서 주눅 들지 않기)
[13] 많은 사람에게 새 삶을 선물하라
사도바울은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예루살렘 교회 수장(leader)인 야고보를 만난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일주일 만에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된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끌고 가 벨릭스 총독에게 고발한다. 그들은 바울이 유대사회를 소란케 하는 전염병(a contagious disease)이며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chief)라고 주장한다. 이 고발의 주체(主體)는 대제사장과 장로들로서 모세의 율법만을 고집하는 유대교 교인들이다.
(행21: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행24:1,5)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러나 바울은 고소된 상태로 2년 동안 제대로 된 재판없이 가이사랴에 구금되어 있었다(A.D.57-59). 바울이 2년 동안 재판없이 허송세월(spin out)을 보낸 것은 벨릭스 총독이 어떤 이익을 바라고 붙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총독이 벨릭스에서 베스도로 바뀌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신임 총독 앞에서 다시 고소했다. 그리고 바울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다시 심문을 받았지만 무죄 취지(無罪 趣旨)의 결론이 났다.
(행24:26-27)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이렇게 복음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된 바울은 로마로 가기를 원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40명의 결사대(do-or-die corps)가 조직되어 신변에 위협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행23:12-13), 또한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행23:11).
(행25: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26:30-32)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구금되었던 바울은 마침내 로마로 압송되어 간다. 압송 책임자는 로마 백부장 율리오이다. 율리오는 바울이 죄수 신분이지만 많이 배려해 주었다.
(행27:1,3)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이제 로마로 가는 항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항해 길은 순탄치 않았다. 바울은 이 사실을 미리 알았고 백부장에게 항해를 늦출 것을 제안했지만 그의 의견은 선장과 선주의 말에 의해 묵살되었다. 그리고 무리한 항해는 계속되었다.
(행27:9-11)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바울의 말처럼 항해는 곧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유라굴로(northeaster)라는 태풍을 만나게 된 것이다. 유라굴로는 지중해에 있는 그레데 섬의 산맥 때문에 생기는 광풍이다. 그레데 섬 한 가운데 2,100m 되는 이다(Ida) 산맥이 솟아 있는데 이 산맥의 영향으로 종종 두 개의 반대 기류가 생기고 이것이 충돌하여 태풍을 일으키는데 바로 그 태풍이 유라굴로이다.
결국 태풍에 맞서 싸운지 사흘 째 되는 날에 배에 있는 물건들을 스스로 바다에 버려야 했다. 배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함이다. 배에 화물이 쌓여 있으면 무게중심이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고 배의 복원력(復元力)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의 물건을 버렸음에도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확신은 가질 수 없었다. 구원의 소망마저 사라졌다.
(행27:14,18-20)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바울이 탄 배는 풍랑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어느 섬에 걸리게 되는데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Melita)였다. 이 일은 바울이 이미 예언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탄 배는 14일 간의 사투 끝에 결국 멜리데 섬에 정박하게 된다.
(행27:25-26)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행28:1-2)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과 함께 온 로마 군인들과 선원들과 상인들 그리고 죄수들에게 동정을 베풀어 준다. 이들의 숫자는 총 276명이었다. 멜리데 사람들은 친절했다. 꽤 많은 사람들임에도 음식과 쉴 곳을 제공해 주었다.
(행27: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그때가 추웠으므로 바울은 나뭇가지 한 묶음을 가져다가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런데 뜨거움으로 인해 나무 묶음에서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바울이 곧 죽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바울은 죽지 않았다. 바울은 독사의 독을 극복해냈다. 멜리데 사람들은 바울을 신(神)이라 불렀다.
(행28:3-4)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행28:5-6)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바울은 이제 그 섬에 있는 많은 병자들을 치료한다. 그들 가운데는 그 섬의 추장(chieftain)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앓았는데 바울의 안수를 받고 고침받았다. 하나님의 종 바울의 선한 영향력이다.
(행28:8-9)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석 달 후, 곧 겨울이 지나고 그 배에 탔던 276명이 멜리데를 떠날 때 섬 사람들은 바울 일행을 잘 대접하고 남은 항해 동안 배에서 쓸 것을 실어주었다. 276명이 석 달을 먹었으니 아마 멜리데 섬은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황량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누구도 이 섬김을 불평한 것 같지는 않다.
(행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멜리데는 지금 지중해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나라 몰타(Malta)로 지중해의 한 가운데 위치한 섬나라이다. 공식명칭은 몰타 공화국(Republic of Malta)으로 면적은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이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세계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다.
바다에서 고난을 당하고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2년간 가택 연금(house arrest)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마침내 재판을 받고 석방되었다. 로마 법정은 유대인들 간의 종교분쟁 사건으로 로마제국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에서 바울에게 무죄를 선언했다. 석방 후 바울은 디도와 함께 튀르키예 서쪽의 그레데 섬과 아가야, 마게도냐 등 아시아 각 교회를 방문하고 스페인까지 방문했다.
그러다 A.D.64년 7월 18일 로마에 대화재(大火災)가 발생하였는데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고 로마 시내 대부분이 잿더미가 되고 만다. 당시 네로황제는 이 화재를 기독교인들의 방화(放火)로 몰아가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인다. 결국 네로황제의 박해 아래서 바울과 베드로는 다시 붙잡혀 A.D. 67년 순교한다. 당시 네로는 이십 대 후반의 혈기왕성한 황제였다. 네로는 바울과 베드로에게 복음을 변증할 기회를 주지 않고 처형했다.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하기 전 갇혀 있었던 로마의 감옥은 지하였고 돌로 축조되었기 때문에 우기에는 냉기(chill)가 뼛속까지 사무쳤다고 한다. 젊은 사람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하물며 여름 옷을 입은 늙은 바울은 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고 했다.
바울이 걸어 간 그의 마지막 길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생명이 보호되고 생명이 회복되는 일들이 나타났다. 함께 배에 탔던 군인들과 선원들과 죄수들 276명이 바다 태풍에서 살아남은 것은 바울 때문이었다. 멜리데 섬의 많은 병자들이 새 삶을 얻은 것도 바울로 말미암았다.
(행27:23-24)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비록 그의 삶은 고난으로 인해 버거웠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새 삶을 살게 되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오늘 바울의 삶을 흠모하게(欽慕,adore)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