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3]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하라
첫 사람 아담이 살던 에덴동산은 낙원(Paradise)이었다. 아담만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금지 규정이 주어졌는데 곧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다. 수만 가지의 자유 속에 단 하나의 예외 규정이었다. 이것은 결코 어렵거나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감사함으로 수용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Adam)이 외롭지 않도록 돕는 배필(helper)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다. 그리고 하와(EVe)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부부갈등이 아닌 뱀에 의해 산산조각 난다.
뱀은 하와에게 찾아와 선악과를 따먹도록 유혹한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금지 규정이라고 대답한다. 여기까지는 하와를 칭찬할 수 있다. 규정을 잘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뱀은 포기할 줄 모른다. 선악과가 금지 규정이 된 배경을 설명한다. 물론 거짓이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다는 것이다.
(창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보통은 사과를 선악과(forbidden fruit)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없는 추측이다. 사과가 선악과가 된 것은 5세기 초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Bosch)에 의해 로마 카톨릭이 정경(正經)으로 사용하던 불가타(Vulgata) 성경이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되면서이다. 선악과를 비슷한 발음을 가진 사과로 번역한 때문이다. 번역 오류가 맞는 것 같다.
성경에 사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선악과라는 표현조차도 없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주무대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가장 흔한 과일인 무화과(fig)를 선악과로 받아들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에 그린 천지창조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인 선악과를 무화과나무로 그렸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뱀에게 설득을 당한 하와는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한다. 남편도 이제 공범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에 있어 점점 과감해졌다. 그리고 뱀이 원하는 대로 행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논리적인 설명 앞에는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 21C에도 고(高)학력자들이 이단 사이비에 현혹되는 것을 보면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게 된다. 결코 속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쉽게 마음을 내어 주기 때문이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뱀의 말에 마음을 연 하와가 선악과를 다시 보니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까지 갖춘 나무였다. 하와는 최면에 걸리고 말았다. 갑자기 열매가 달라 보였다. 아담 또한 아내의 용기에 힘입어 선악과를 먹고 말았다. 결국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다. 성경은 솔로몬의 입을 빌려 말씀한다.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된 것은 그들이 뱀, 곧 사탄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귀 담아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마음에 받아들였다. 세상 말로 그들은 뱀을 개무시(ignore) 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들은 귀로만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사탄의 말을 듣고 말았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주님께로 향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처럼 사탄에게 마음을 내어주면 생명의 길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사건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그리고 수고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징계가 주어졌다. 모든 것이 주어졌던 환경에서 이제는 이마에 땀이 흐르고 땅을 갈아야만 살 수 있는 척박한 삶으로 전환된 것이다.
(창3:16-17)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
(창3:2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는 본래 열 두 사도의 반열에 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 제자들과 달랐다. 사탄이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26: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배반할 목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 사탄이 제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의 마음에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그에게 주입했기 때문이었다. 가룟 유다에게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가룟 유다는 사탄의 바램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넘겼다.
그러나 곧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깨닫고 상황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예수님은 사형 판결을 받았다. 결국 그는 주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마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바 그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탄은 지금도 또 다른 배교자(apostate), 곧 제2의, 제3의 가룟 유다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에 조금의 틈만 생겨도 사탄은 곧 우리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파수꾼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의 입술에 파숫꾼을 세워 주시고 악한 일에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시141:3-4)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엔진이 깨끗할수록 달리는 힘은 강해집니다.’ 주유소의 광고 문구이다. 이 표현은 우리의 마음을 적중(的中,hit)하는 말이라 생각된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균열시키고 좀먹는 주범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향한 순결한 마음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빛나고,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얼굴이 상하게 된다. 이 마음이 낮아지면 겸손이지만 마음이 높아지면 교만이 된다.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물론 마음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수제자 베드로도 로마 군병의 창칼 앞에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를 자청했다.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요21:18-19a)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솔로몬은 노년에 그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 많은 이방 부인들로 인해 여호와 신앙을 떠나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되고 말았다. 아마도 추측인데 죽기 전에는 모든 불신앙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것이라 기대한다.
(왕상11:4-5)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결국 예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육신이 연약하기에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깨어서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마음의 심지(resolve)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고 말씀한다. 또한 마음의 심지가 견고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평강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마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perfect peace)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