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4]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우라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첫 장편소설 제목은 <개미>이다. 이 작품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서 12년 동안 무려 120번의 원고 수정을 거쳐 탈고(脫稿)했다고 한다. 그의 부지런함과 끈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모두 1,2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개미> <뇌> <나무> <신>은 각각 누적 판매 부수 100만부 이상을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 판매부수의 절반이 한국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베르나르는 우리 나라 몇몇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베르나르는 개미에 대해 '인간과 다르게 종교나 불필요한 이유로 서로를 공격하지 않으며, 협업하면서 대화하고 살아가는 더 진화된 생물이다' 라고 말한다. 또 그는 책에서 '행동하라, 무엇인가를 행하라.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의미 있는 뭔가로 만들라. 당신은 쓸데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지를 발견하라.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부지런함은 한 작가의 외침을 넘어 이 땅을 다녀간 많은 부모들이 그의 자녀들에게 남겨준 덕목이다. 부지런해야 인생 목표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부지런하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북한은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해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솔로몬도 잠언서에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말한다. 어쩌면 개미의 부지런함은 생존 본능인지도 모른다. 여하튼(anyway) 부지런함이 좋다는 말이다.
(잠6:6-8)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성경의 인물 가운데 부지런하게 살았던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야곱이 아닐까 생각한다. 야곱은 무일푼으로 외삼촌 라반을 찾아가 이십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해서 큰 재물을 얻었다. 그는 이십 년의 세월을 이렇게 회상한다.
(창31:38-40)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야곱의 성공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땀과 수고로움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 것이다. 비록 야곱은 수고로움 때문에 육신은 지치고 쇠했지만 거부가 되었다. 정직한 댓가였다. 본래 야곱은 속이는 자였다.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지런함과 수고로움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
부지런함이 곧 신앙은 아니다. 하지만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신앙인은 자기만을 위해 살지 않고 이웃을 섬기는 사명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엡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지런함 때문에 신앙이 희석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부지런함이 신앙을 약화시켜선 안되는 것이다. 어느날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말씀 듣는 일에 집중했다고 말씀한다. 인간적으로는 손님 대접이 우선인 것 같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말씀 듣는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눅10:38-42)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
개미는 여름과 가을에 부지런히 겨울을 준비한다.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다. 채찍들고 호령하는 존재도 없다. 그러나 개미들은 겨울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개미에게서 배워야 하는 바는 오늘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이번 겨울이 혹한일지, 포근할지는 개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개미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잠6:7-8)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그러나 게으른 자는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신다. 그래서 잠을 자며 인생을 허비하는 자에게는 가난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아무리 도와준다 하더라도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는 뜻이다. 게으름은 스스로 벗어 던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는 데는 세월이 소요되지만 게으름으로 인한 가난은 순식간에 강도처럼, 군사처럼 찾아온다.
(잠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게으름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어떤 조직이나 교회에서도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에게 업무를 위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살후3:10-12)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곤충학자의 말에 의하면 개미는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쉴새없이 일을 한다고 한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어서 누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억지로 마지못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부지런히 일을 한다. 어떤 사람은 개미가 아무 생각이 없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미는 생각이 없는게 아니다. 성경은 '개미에게 가서 지혜를 배우라' 고 한다. 개미에게는 부지런함과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미는일 년 내내 일할 수 없음을 잘 안다. 날씨가 추워지면 밖에 나와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여름에 집을 짓는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양식을 비축한다. 따뜻한 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개미는 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진다는 것을 개미는 안다. 개미는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다. 일개미가 모아 들이는 들풀이나 씨앗의 종류는 18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것이 개미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개미를 보며 우리는 인생의 때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네 인생이 개미나 다른 곤충들에 비해서는 천문학적으로 오래 살지만, 그래봐야 팔 십 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상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병(病)과의 동행(同行)일 뿐이다. 해가 서산(西山)을 넘어가 지듯이 점점 기울어져 가는 인생을 깨달아야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솔로몬의 시(詩)에 귀를 기울여 보자.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와 선조들을 통해 삶을 배우게 하셨고, 하챦은 곤충인 개미를 통해서도 인생을 학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는 것은 분명 배려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많이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이 우화가 있다. 이 우화는 우리나라 버전(Version)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버전, 러시아 버전, 쿠바 버전, 일본 버전 등 여러 나라의 버전이 있다. 우리 나라 버전은 겨울이 되어 개미는 행복하게 따뜻하게 살았지만 베짱이는 춥고 배고파 방황했다는 다소 뻔한 결말이다.
그러나 일본 버전(Version)은 결말이 조금 다르다. 겨울이 되어 베짱이가 개미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글쎄 개미가 죽어 있는 것이다. 사인(死因)은 과로사(過勞死)였다. 여름에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일본 버전은 개미의 해피엔딩(happy ending)이 아니라 새드엔딩(sad ending)으로 끝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열심히 수고한 자에게 해피엔딩이 주어진다. 일본 버전은 그저 우스개일 뿐이다. 우리는 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뜻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심판 날에 개미의 교훈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복되게, 영화롭게, 명예롭게 할 것이다. 부지런함과 충성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전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어느 기자가 노숙인에게 왜 일하지 않고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이게 너무 편하고 좋아서' 라고 답했다고 한다. 삶의 목적과 사명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인생 결산을 해야만 한다. 그런고로 이제라도 삶의 목적을 깨닫고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