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신앙에세이 - 유혹은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문학n천국 2023. 3. 26. 21:47

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6] 유혹은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잡는 방법이다. 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짐승의 피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피를 밖에 내놓고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그 속에 세워둔다. 핏덩이는 곧 꽁꽁 언다. 그리고 그 얼어버린 핏덩이를 늑대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둔다. 그러면 늑대들이 지나가다가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서 혀로 핥기 시작한다.

차가운 얼음에 혀의 감각이 마비된 줄도 모르고 계속 핏덩이를 핥는다. 그런데 핥으면 핥을수록 점점 더 맛있는 피가 나온다. 이제는 차가운 피가 아니라 따뜻한 피가 나온다. 얼음 속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칼에 자기의 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빨아 먹는다. 그리고 자기의 몸 속에 있는 피를 다 빨아먹고 나면 늑대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만다.

죄가 이와같다. 죄는 사망으로 가는 길이다. 죽기까지 멈추지 못하는 것이 죄의 마력(魔力,spell)이다. 죽은 후에야 자기의 어리석음을 발견하게 된다. 죄의 유혹은 달콤하여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그것을 행하게 한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할 열매로 보였기에 망설이지 않았던 것과 같다. 그 결과 죄는 마치 자석처럼 심판을 끌어 당긴다. 죄는 언젠가는 자기 머리 위에 심판의 불이 떨어지게 한다. 죄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를 가져온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를 심판하신 두 개의 큰 사건이 있는데 첫째는 노아의 홍수 심판이고, 둘째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다. 노아(Noah)의 홍수는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킨 재앙이었고,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의 멸망은 팔레스타인 사해(Dead Sea) 남쪽의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내리셔서 잿더미가 되게 하신 재앙이었다. 이 재앙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두 딸, 곧 세 명만 겨우 살아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그 심판이 엄중하여 여덟 명과 세 명만 멸망에서 살아남게 하셨다. 요즘 말로 세상을 싹 다 갈아 엎어 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소수의 몇 사람들을 통하여 다시 시작하셨다. 컴퓨터 용어로 리부팅(re-booting)이다. 노아의 가족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그리고 롯의 두 딸을 통하여는 모압과 암몬 족속이 시작되게 하셨다.

(베드로후서 2:5-8)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문제는 우리가 죄를 범하도록 부추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선악과는 이들 부부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나 뱀, 곧 사탄이 하와를 미혹함으로 이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뱀은 아담과 하와 부부가 범죄하도록 부추긴 후 슬며시 자리를 피한다.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사람을 범죄케 한 뱀은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수는 없었다.

(창세기 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또한 사탄은 온전한 신앙인이었던 욥을 미혹했다. 이번엔 욥의 아내를 통해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미혹한다. 욥은 흠이 전혀 없는 신앙인으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신 인물이었다. 욥은 당시 동방의 모든 사람에게 공경받는 사람이었고, 가장 큰 부자였다. 그러나 사탄의 저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럼에도 욥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욥기 2:7-10)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사탄에게 열 명의 자녀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온 몸에 종기가 나는 재앙을 당했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았다. 하나님을 원망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솔로몬도 한 여인을 소개한다. 이 여인은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에 앉아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여인은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말한다. 즉, 은밀한 쾌락이 좋다며 유혹하는 것이다. 마치 어부가 그물을 던지듯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잠언 9:13-18)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인들을 불러 이르되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성서주석에 따르면 물을 마신다는 것은 부부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다시말해 도둑질한 물이 달다는 것은 불륜의 쾌락을 뜻하는 것이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는 것도 간음을 부추기는 표현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11:25절에 이러한 쾌락은 '죄악의 낙(樂)'이라고 말씀한다. 스올 곧 지옥으로 달려가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런 죄악을 행한 자들은 이미 스올 곧 지옥 깊은 곳에 있다고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혹을 피할 수는 없다. 유혹은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벌판에서 적장을 향해 마지막 화살을 쏘면서 하는 말이다. 맞바람이 불어오는 불리한 조건에서 내뱉는 말이다. 그렇다. 어려움은 피하는 게 아니라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유혹을 피할 수 없다면 극복하면 될 일이다.

(야고보서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사탄, 곧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적극적인 방법은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장소를 피하는 것이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예수의 이름으로 그와 맞서는 것은 적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사탄에게는 배려나 긍휼이 없다. 사랑 긍휼 온유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사탄은 우리가 가장 처참한 상태가 되기까지 우리를 향한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우리 모두에게 지옥을 선물하고자 한다. 스스로가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요셉이 있다.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이다. 하지만 열 일곱 살에 이복 형들에 의해 애굽(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며 피묻은 옷을 보여준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고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애굽 왕궁의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노예가 되었다. 고생을 모르고 살았던 귀한 아들이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조금도 이 상황을 불평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겨우 열 일곱 살인데 말이다. 어느새 그의 안에 자리잡은 신앙때문이다.

요셉은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즐거움으로 성실함으로 일을 감당해내는 요셉이 보디발의 눈에 들어왔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았다. 낙하산 인사도 아닌데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이제 스무살 쯤 되는 청년이 가정의 총무가 되었으니 다른 하인들의 시기와 질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묵묵히 그의 일만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데서 위기가 찾아왔다.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계속 유혹하는 것이다. 요셉에게 적극적으로 잠자리, 곧 성관계를 요구한다. 요셉은 죄를 범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어떤 이들은 이 부분에서 여주인의 유혹을 기회로 삼고자 할 것이다. 여주인의 마음에 들면 노예 신분에서 해방될 수도 있고 만사형통(萬事亨通)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요셉의 거듭되는 거절에 보디발의 아내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다. 노예 청년에게 거절당한 여주인의 체면에 큰 흠집이 난 것이다. 그리고 여주인은 자신의 부끄러운 언행을 감추기 위해 요셉을 강간미수범으로 보디발에게 고발한다. 요셉이 여주인을 성폭행하려 했다고 혐의를 씌운 것이다.

호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을 자기 집에 있는 감옥에 감금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감히 노예  따위가 여주인을 탐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디발은 아내의 고발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은 듯 하다. 그간의 요셉의 신앙이나 태도로 보아 가능성이 적다고 본 듯하다. 그래서 아내의 분노도 풀어주고 요셉의 목숨도 지켜주기 위해 감옥에 감금한다. 물론 요셉은 무척 억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억울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을 원망한 것도 아니다. 여주인이 누명을 씌웠다며 항변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 앞에서만 자신의 심정을 토로(uncork) 했을 거라 생각한다.

요셉이 맞고소 하지 않고 잠잠함으로서 여주인은 명예를 잃지 않았고, 요셉은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주인 성폭행 미수는 죽어 마땅한 죄임에도 보디발은 요셉에게 자기 집에 있는 정치범 감옥에서 간사(幹事)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정치적인 용어로 재신임(再信任)이다.

이 사건을 겪고 난 후 시간이 흘러 요셉은 애굽 왕의 어려운 꿈을 해석해 주고 정치적 돌파구(breakthrough)를 제시해 줌으로써 애굽의 총리에 임명된다. 이때 요셉의 나이 삼십 세였다. 이때부터 요셉은 110세에 죽기까지 총리직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요셉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유혹은 없다. 차가운 유혹만이 있다. 유혹은 결말까지 아름다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혹은 우리 심장 깊숙히 박히는 가시가 될 것이다. 솔로몬은 유혹의 결말을 스올(Sheol), 곧 지옥(地獄)이라고 선언한다.

유혹을 극복할수록 우리는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하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유혹을 물리치는, 유혹을 거절하는 지혜를 선진들에게서 배워야 하겠다.

(잠언 9:18)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