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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응원받는 삶이 되라

문학n천국 2023. 4. 5. 19:56

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8]  응원받는 삶이 되라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
(Forgive but never forget).

홀로코스트(Holocaust, 1933~1945)를 겪은 유대인의 경구(警句, aphorism)이다. 홀로코스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독일과 독일의 점령지에서 계획적으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는 독일 국민들이 세계 1차 대전에 패전한 원인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총리가 된 히틀러가 독일은 내부의 적 때문에 전쟁에 진 것이고, 그 내부의 적으로 유대인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대청소라는 명목 아래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유대인을 동원해서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 옷을 벗기고 자신이 판 구덩이에 들어가게 한 후 총기로 난사해서 죽였다. 이후에는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가스실을 만들어 샤워실이라고 속이고 수감자들이 스스로 옷을 벗고 들어가게 했으며 그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샤워기까지 달아 놓았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박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유럽에 뿌리내렸는데 1930년대 독일을 휩쓴 나치즘과 아돌프 히틀러 때 극에 달했다.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로 당시 유럽 내 전체 유대인의 3분의 2가 희생되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그들을 용서했다. 여기서 용서라는 것은 망각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용서하되 과거를 기억하겠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또한 유대인 그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20세기 초반을 살았던 유대인들은 히틀러 한 사람에 의해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다.

세계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의 고난은 이렇게 기록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성경에도 유대인들의 고난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고, 모세에 의해 가나안 땅, 곧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정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 연대는 B.C.1,445년 경이다.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이다. 이것이 유대 민족의 첫 번째 고난과 해방 기록이다.

다음은 이스라엘의 제 3대 왕 솔로몬이 죽고 360 여년이 흐른 후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 간다. 이때가 B.C.586년이다. 바벨론 포로는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B.C.605년, 597년, 586년). 그러나 강대국 바벨론도 이때로부터 50 여년이 흘러 B.C.538년 바사와 메대, 곧 신흥 강국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한다. 페르시아는 오늘날 이란(Iran)이다.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며 해방을 선포한다. 유대 민족의 두 번째 해방이다.

그러나 고향인 가나안 땅, 곧 팔레스타인으로 귀향한 유대인들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바벨론 땅, 곧 페르시아 제국 영토 안에서 정착해 살았다. 이들을 우리는 흩어진 유대인들이라는 뜻으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페르시아 제국은 고레스 왕을 시작으로 10명의 왕들이 통치했다. 그 중 다섯 번째 왕이 아하수에로(B.C.486-465)이다. 아하수에로는 20년을 통치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의 두 번째 왕비가 그 유명한 에스더 왕후인데 유대인이다.

에스더는 어렸을 적에 일찍 부모를 잃고 40년쯤 나이가 차이 나는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게 입양되어 딸처럼 양육된다. 이들은 제국의 도성인 수산에 살고 있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재위 3년에 큰 잔치를 베푼다. 나라의 부강함과 왕권의 견고함을 자축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칠일 째 되는 날 모든 신하들이 모인 잔치 자리에 왕후 와스디를 부른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 신하들 앞에서 왕의 체면이 크게 손상을 입었다. 왕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함이었는데 마땅한 이유도 없이 거절당한 것이다. 왕은 분노했다.

(에스더 1:11-12)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

아하수에로 왕은 법률을 잘아는 일곱 방백 중 하나인 므무간이라는 신하에게 자문을 구한다. 므무간은 법률에 따라 왕후를 폐위시키고 새 왕후를 맞이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하여 왕후 와스디는 폐위된다. 와스디가 폐위되고 전국에 새 왕비를 간택하는 공고가 선포된다. 전국에서 처녀들이 모여들었고 아하수에로 왕 제 7년에 에스더를 왕후로 간택한다.

(에스더 1:19)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에스더가 왕비가 되고 5년 후 하만이라는 왕 다음으로 권세있는 신하가 유대인들을 몰살하고자 한다. 에스더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하만의 계획하에 유대인 몰살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이 전해졌고  왕비 에스더의 귀에도 들어갔다.

(에스더 3: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왕비 에스더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삼일 금식을 명령하고 자기도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왕비라 할지라도 왕의 부름없이 나아가면 벌을 받던 시대였다. 그래서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고 선포하며 나아간다. 이 말은 지금도 굳은 의지를 나타낼 때 회자(膾炙)되는 표현이다.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아하수에로는 에스더가 왕의 부름도 없이 나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에스더가 너무 아름다워 벌을 내리는 대신 소원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에 에스더는 하만의 유대인 몰살 계획을 고한다. 화가 난 왕은 하만을 붙잡아 높은 나무 기둥에 달아 처형시킨다. 이것으로 에스더는 몰살 위기에 있던 유대인들을 구해낸다는 것이 구약성경 에스더서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에스더 7:9-10)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다수가 아닌 한 사람 혹은 소수에 의해서이다. 사촌 오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이 말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며 왕에게 나아갔고 많은 유대인들을 구해냈다.

(에스더 4:13-14,16b)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솔로몬은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망하면 기뻐 외친다고 말한다.
(잠언 11: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히틀러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을까? 아니면 에스더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을까? 아마도 죽이고 빼앗는 사람을 응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치된 마음으로 저주가 임하길 희망할 것이다. 그래서 악인이 망하면 성읍이 기뻐 소리지르는 것이다. 하지만 욥과 같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그들의 삶의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면 모든 사람이 내  삶을 공감하고 응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약성경이 말하는 세 명의 의인은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다. 이것은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에스겔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들 중 욥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어떠했는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욥기 29:11-13)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욥기 29:21,23-24)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의인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의인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인은 오히려 유익을 끼친다. 그래서 의인때문에 성읍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이런 의인의 성공을 응원하고 함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온 국민이 저녁시간에 모여 피겨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을 응원했던 것을 기억한다. 정말 한마음이었다. 난 그때 큰어머니 장례식에 참석 중이었는데 장례식장의 엄숙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두 TV 앞에 모여 응원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고 경기장에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온 국민이 함께 눈시울을 적셨던 것을 기억한다.

세상에서 최고가 되어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응원을 받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것이 솔로몬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잠언 11: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