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9] 녹슬어 없어지기 보다 닳아서 없어져라
18세기 영국 감리교 목사였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는 '좀 쉬면서 일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녹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닳아서 없어지는 망치가 되고 싶지, 녹슨 망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닳아져 없어지는 게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본다. 닳아서 없어진다는 것은 자기 할 일, 곧 사명을 다하고 떠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난 후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왜 하필 안식일에 환자를 치유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며 반박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멈추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5:15-17)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렇다. 다 쏟아붓고 가자. 어차피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욕심내도 결국 다 내려놓고 가야 한다. 단 하나 믿음의 수고만 하나님 앞에 기억될 뿐이다. 양초가 자신의 몸을 불살라 빛을 선물하듯이 우리도 그럴수만 있다면 좋겠다.
어린이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삶을 배우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셸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글로 한 그루의 나무가 자신을 사랑한 소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아낌없이 내어준다는 이야기다.
간단히 요약하면, 한 소년이 사과나무 밑에서 놀고 있다가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면 그것을 따먹고 자란다. 그리고 그 소년은 청년이 되어 결혼을 한다. 청년은 사과나무 가지를 잘라서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는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청년은 장년이 되어 이번에는 아예 사과나무 둥치를 베어 배를 만들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세월이 또 흘러 소년은 노인이 된다. 이제 기력이 다해 버린 노인이 된 소년은 여태까지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준 사과나무의 그루터기에 와서 조용히 앉아 쉼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사과와 관련해 재밌는 사실이 있는데 사과는 본래 우리나라 과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능금이 수입되어 재배되었는데 사과와 비슷하여 사과와 동일시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엄밀히 능금과 사과는 같은 과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먹는 사과는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수입되어 대구 동산병원에 심겨져 대구가 사과 주산지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사과의 역사는 130년쯤 밖에 안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떡을 흘려 보낼 것을 권한다.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면서 말이다. 다시 찾을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평안할 때 이 일을 행하는 것이다.
(전도서 11:1-2)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솔로몬은 지금 떡, 곧 양식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로 보내라는 의미이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것은 훗날 내게 필요한 때에 돌려 받는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행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잠언서에서도 솔로몬은 말한다.
(잠언 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솔로몬은 과도히 아껴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남을 돕는 자가 풍족하며 윤택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역설(逆說, paradox)이고, 새로운 경제관념(經濟觀念)이다. 나눠 줄수록 풍족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보증(guarantee)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에 있어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이다. 이 과부는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데 삶이 너무 고단하다. 집에 양식이 다 떨어져 간다. 요즘이라면 동사무소나 구청에 문의해 긴급 생계 지원을 받으면 되겠지만 당시는 나라 전체가 어려우니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리고 당시에는 복지라는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고아와 과부에 대한 관심과 동정이 율법의 명령이지만 요즘의 복지 개념은 아니었고 모든 백성들의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신다. 과부의 가정은 굶어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입이 하나 더 늘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하나님의 의중(intention)이 의심받을 상황이다. 거기다가 선지자는 눈치도 없다. 당당하게 떡을 하나 만들어 오라고 한다.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는 시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열왕기상 17:11-12)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는 과부에게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믿고 내 말대로 하라고 한다. 그런데 선지자가 기적에 대한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지만 과부는 그 말에 순종한다. 그 결과 가뭄이 지나기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왕기상 17:14-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여인이 선지자를 무려 삼 년 이상 공궤한다. 극심한 가뭄이다 보니 우리네 표현대로 하면 보리밥에 간장 하나가 식단의 전부이겠지만 선지자에 대한 대접은 오랜 세월 계속되었다. 사르밧 과부는 매일 매일이 기적이었을 것이다. 뜻밖의 선지자의 방문과 계속해서 채워지는 가루와 기름이 삼 년 이상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이 가뭄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백성들을 징계하심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한 뜻이 되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어떤 모양으로든 먹이고 입히시길 원하신다. 사실 가뭄 기간 동안 엘리야 선지자를 여러 방법으로 먹이시면 될 일이었다.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굳이 사르밧 과부 가정에 보내실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 가정이 하나님의 눈에 들어왔다. 요즘 표현으로 이 가정은 위기 가정(Crisis family)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구하기 위해 선지자를 그곳에 보내신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명분도 없이 선지자가 과부 집에 눌러 앉을 수 없으니 경제적인 궁핍을 이용하신게 아닌가 싶다.
신약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이달리야대의 고넬료 백부장이 있다. 로마군대의 지휘관이다. 요즘 우리 군대의 중대장 쯤 되는 장교이다. 수하에 부하 백 명을 거느리기에 백부장이라고 한다. 인원수에 따라 십부장, 오십부장, 천부장 제도도 있다. 이것은 모세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있었던 군대 구조이다.
(출애굽기 18:21-22a)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
고넬료(Cornelilus)는 이방 군대의 장교임에도 주둔지인 유대 땅의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다. 피정복민들을 돕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이방 군대의 백부장을 기억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를 보내 고넬료의 가정을 구원해 주셨다. 그의 신앙과 선행을 헛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10:2, 44)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남을 돕는 일은 인색한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 아마 백부장 고넬료는 군인 봉급의 일부를 떼서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했을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셨듯이, 베드로 사도를 보내 고넬료의 가정을 구원해 주셨다.
하나님께나 이웃에게나 인색한 마음은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영국 농부 한 사람이 소 한 마리를 길렀다. 그런데 그 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낳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송아지를 두 마리나 얻었는데 한 마리는 우리 것으로 하고, 한 마리는 주님께 드립시다' 신앙이 별로 없던 남편의 말을 듣고 부인은 기뻤다. '우리 남편이 이제 신앙이 좀 생기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남편이 아주 낙담한 얼굴로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하는 말이 송아지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물었다. '누구 송아지가 죽었어요?' 그러자 남편이 대답하기를 '그야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지...' 라고 했다 한다.
송아지에게 이름표를 붙여 놓은 것도 아닌데 죽은 송아지가 주님 것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다. 우리가 선행을 할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인색함이다.
(고린도후서 9:6-9)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네 인생을 쓸모없는 일에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분은 평생 목탁을 두드리다가 지옥가고, 어떤 분은 평생 술과 노름에 빠져 살다가 지옥에 들어간다. 한 번 뿐인 인생을 그렇게 보내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으로 살아가야 한다. 녹슬어 없어지는 인생 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더 의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