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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 배려의 시작은 칭찬이다

문학n천국 2023. 6. 13. 08:05

김상용목사의 <잠언서> 에세이
{ 솔로몬에게 듣는.. 인생 사용 설명서 }

[25] 배려의 시작은 칭찬이다

(잠언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The crucible for silver
      and the furnace for gold,
      but people are tested by their praise.

미국 워싱턴 D.C.에는 관광명소로 알려진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이 있는데 거기에 링컨 대통령이 암살 당하던 날 그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세 가지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링컨은 대통령 재선에 성공한 뒤 육개월 후 워싱턴 포드극장에서 아내와 함께 공연 관람 중에 노예 해방을 반대했던 존 윌크스 부스에게 피습당했다(attacked). 1865년 4월 14일, 그의 나이 56세였다.

링컨의 호주머니에서는 그가 선물받은 링컨의 이름을 수놓은 작은 손수건 한 장, 어느 시골 소녀가 보내준 주머니칼 하나, 그리고 자신을 칭찬하는 기사가 실린 낡은 신문 스크랩 한 조각이 있었다.

그 신문 조각에는 '링컨은 역대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링컨처럼 위대한 사람도 자신을 칭찬해주는 신문기사 한 조각, 자신에게 격려가 되는 손수건 하나, 선물받은 주머니칼을 넣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보며 위로를 받고 힘을 내고 살아야 할 이유를 되새겼던 것이다. 

링컨의 유품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람은 배려를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나를 배려해 주는 사람으로 인해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 배려는 선물일 수도, 양보일 수도, 칭찬일 수도 있다.

도가니에서 금속을 녹일 때 금속이 녹는 온도는 납 327 °C, 은 960 °C, 금 1,063 °C, 구리 1,083°C, 철 1,539°C 이다. 이 온도에 도달해야 금속이 온전히 녹아서 불순물이 걸러지고 우리가 바라는 순수한 금속, 곧 순은 순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단련하는 것은 칭찬이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물론 전혀 다른 결과를 만날 수도 있다. 칭찬이 사람을 교만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칭찬이 강한 사람을 만든다고 말씀한다. 뿐만아니라 <표준새번역 성경>은 잠언 27:21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듯이, 칭찬은 사람됨을 달아 볼 수 있다' 칭찬을 해보면 그 사람의 그릇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다보면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장소가 언급되는데 이곳은 가정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것으로 보아 공간이 넓은 가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부유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곳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기도모임을 가졌고, 그곳은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임했던 장소로 지목된다. 쉽게 말해 교회의 탄생은 마가의 다락방 공동체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도행전 1:13-15a)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의 부유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래 유대식 이름은 요한이지만 로마식 이름인 마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마가는 바나바 사도의 조카이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그의 집을 120명의 모임장소로 제공하였다. 기독교 신앙이 핍박받던 시기에 예배처소를 제공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했다는 것이다.

요즘 열 명 남짓 모이는 구역예배 장소가 부담이 되어서 식당이나 카페에서 구역모임을 갖는 것을 감안하면 120명을 섬기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섬김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마가는 외삼촌이자 신실한 사람인 바나바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고 결정적으로 베드로에 의해 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벧전 5:13). 이렇게 해서 예수님을 따르게 된 마가는 어느날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붙잡히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몸에 두르고 있던 홑이불을 벗어 던져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일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수님은 마가의 배신을 예상하셨을까? 이렇게 혼자 살겠다고 줄행랑치는 마가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보통 우리가 제자라고 하면 스승을 보호하고 스승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게 도리인데 마가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마가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한 마가복음서에 자신의 누추했던 지난 일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마가복음 14:51-52)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그리고 이후에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게 된 마가는 도중에 밤빌리아에서 스스로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마도 첫번 째 선교지인 구브로 섬에서 많은 시간을 드리고 열정으로 전도했지만 겨우 한 명만 구원하고 다른 열매가 없자 밤빌리아에 도착한 후 이방인 전도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또한 마가에게는 선교활동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감내할 용기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마가의 나약함은 2차 전도여행을 앞두고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다투고 갈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 데려가고자 했지만 바울은 사명감 없는 마가가 전도열정에 찬 물을 끼얹는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청년 마가는 사명감도 없고 열정도 부족했던 청년 성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후 마가는 많은 연단을 겪은 후 다시 바울 사도에게 발탁되었다. 겁많고 실수를 거듭하던 마가는 병약한 몸으로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바울 사도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어려움 앞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감옥에서 바울의 수발을 들면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마가는 바울에게 비판받던 사람이었으나 나중엔 바울에게 인정받고 칭찬듣는, 그리고 바울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사람, 선교지에서 혼자 도망쳤던 사람 마가 요한은 오히려 마지막에는 병든 바울 사도를 끝까지 배려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삶이나 신앙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배려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배려는 또 다른 사람이 학습하여 같은 모양으로 행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의 슈타인거리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길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경찰이 노인의 태도를 유심히 살핀 후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줍고 있습니까, 습득물은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 쯤은 알고 계시겠지요?'

노인은 경찰관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내며 대답했다.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시지요' 하지만 경찰은 노인의 주머니를 강제로 뒤졌다. 그런데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은 온통 유리 조각이었다. 노인은 경찰에게 말했다. '어린 아이들이 이 유리조각을 밟아 다치면 안되지 않습니까?' 경찰은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노인은 누구신가요?'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조그마한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이 노인이 바로 그 유명한 근대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Pestalozzi)였다. 사랑은 이렇게 작은 배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자기 하인이 죽을 병에 걸려 고생하고 있어서다. 마태복음 8장에는 그 하인의 질병이 중풍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부장은 그 하인의 치유를 위해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 은혜를 구했다. 유대인 장로들은 백부장이 유대인을 위해 많은 선(善)을 행했으니 그에게 은혜를 베푸심이 합당하다고 고했다.

(누가복음 7:2-5)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다른 사람이 복 받기를 빌어주는 것은 강요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자기 진심이라야 다른 사람 잘되게 복을 빌어 줄 수 있다. 더구나 자기들을 압제하는 이방군대 장교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이스라엘 안에 이만한 믿음은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 또한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백부장의 넓은 마음 씀씀이(broad-minded)를 귀히 보신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닌 하챦은 종의 고통에 공감한 백부장의 마음이 예수님을 놀라게 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인의 중풍병을 즉시로 고치셨다. 하인을 만나지 않고도 치유가 나타나게 하셨다. 성경은 이후의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하건대 그 하인은 그날 이후 마지 못해서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주인의 손과 발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하인을 배려한 백부장과 하인 모두 윈윈(win-win)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배려가 넘쳐나 서로가 윈윈(win-win)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시작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1876년 발간된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좋은 칭찬을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두 달을 살 수 있다'(A nice compliment can live two months on its own) 라고 했다. 또한 <칭찬의 심리학>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칭찬은 꼭 그런 사람을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이다.